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7주가 지나도록, 소셜미디어에선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와 중화기에서부터 길거리의 수많은 민간인 시신들, 학살 현장, 병원∙주거 단지 파괴 등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전쟁범죄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군사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공분을 초래하는 소셜미디어 전쟁에선 압승했다고들 한다.

우크라이나 군인이 민간통신사와 스타링크로 연결된 인터넷으로 화면을 보면서 러시아군에게 폭탄을 투하할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우크라이나군 배포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군은 인터넷으로 드론을 조종해 폭탄을 러시아군 장갑차∙탱크∙트럭에 투하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으로 계속 국민에게 항전을 독려한다.

하지만, 현대 전쟁에서 상대국 군대의 지휘∙통신 체계를 마비시키기 위해, 전쟁 초기에 통신∙전력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것은 상식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통신∙인터넷 서비스를 차단∙교란할 수 있는 가공할 해킹 능력과 폭격 능력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전쟁 초기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 시스템을 파괴하는 ‘와이퍼웨어’ 공격을 했고 웹사이트 접속을 막는 디도스(Ddos)공격도 했다. 또 미국의 민간 통신위성인 비아샛(Viasat)을 사이버 공격해 서비스에 일부 지장을 초래했다. 그러나 제한적이었다. 러시아군은 통신∙인터넷∙전력 네트워크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물리적 공격도 자제했다. 왜 그랬을까.

◇러시아군, 자체 통신을 우크라이나 민간 통신 네트워크로 해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군의 작전에 우크라이나의 민간 통신 네트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대부분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암호화하지 않은 통신을 주고 받는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러시아군은 심지어 저가(低價)의 워키토키로 송수신 했다. 현대적인 군용(軍用) 통신 장비는 1초에도 수시로 주파수를 바꾸고 신호를 암호화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전투 중에 열악한 러시아군 통신 주파수 대역에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 통신을 방해하거나, 통신 내용을 엿들었다. 러시아군의 작전 내용과 위치는 그대로 노출됐고, 지금까지 7명의 러시아 장군이 최전선에서 지휘하다가 숨진 배경엔 이 허술한 통신 탓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군은 민간 통신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핸드폰에 매달렸다. 구글의 ‘위협분석그룹’ 장인 셰인 헌틀리는 폴리티코에 “러시아군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작전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의 민간 통신 네트워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러시아 병사들은 우크라이나 통신사들이 러시아 번호를 통한 접속을 차단하자,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핸드폰을 대거 강탈해서 서로 연락을 취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정보통신 당국은 민간인들에게 핸드폰을 빼앗겼으면 즉시 신고하도록 해, 해당 핸드폰 번호의 착발신을 막았다.

◇속전속결 예상…복구 오래 걸릴 통신∙전력 인프라 놔뒀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또 러시아가 애초 이번 전쟁이 속전속결로 끝날 것으로 착각하고,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통신∙전력 네트워크 등을 파괴하지 않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

2014년 러시아군이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했을 때, 새로 이동통신탑(cell tower)을 다시 세우고 통신망을 완전히 복구해 러시아인들이 사용하게 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집을 빼앗아 사는 게 목적이라면, 집을 불태워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매우 빗나간 착각이었지만, 러시아로서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해방군으로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마음을 사고 질서를 회복하려면, 통신∙전기∙수도 시설은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최소한 전쟁 초기에는 했을 수 있다.

◇도청으로, 우크라이나 지도부 생각 읽어

사실 러시아 정보당국은 이미 우크라이나 통신사가 운영하는 전화선과 이메일을 모두 도청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2017년, 푸틴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전 총리 율리아 티모셴코, 유럽연합(EU) 고위 관리, 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차관보인 빅토리아 눌런드와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 제프리 파이어트 간 통화 등 우크라이나발(發) 여러 통화 내용을 인터넷에 슬며시 누출했다. 공개되면, 우크라이나∙미국∙EU 사이가 어색해지거나 입장이 곤란해지는 내용이었다. 눌런드는 “망할 EU”라고 했고, 티모셴코 전 총리는 EU 관리에게 “지금이야말로 총 들고 망할 러시아놈들과 지도자를 모두 죽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민간통신의 통화-이메일을 수시로 도청할 수 있는 푸틴으로선, 수도 키이우의 통신네트워크를 보존해 우크라이나 수뇌부의 '생각'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자료 사진

러시아군은 특히 수도 키이우의 통신 네트워크를 보존해야, 우크라이나 정부∙군 수뇌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 통신 서비스의 대부분은 또 러시아 기업, 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합작기업이 운영해, 러시아는 ‘백도어(backdoor)’로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언제든 도청이 가능하므로, 러시아로선 “계속 통화하게 놔둘 것이냐, 아니면 끊을 것이냐”의 선택만 있었다.

이 탓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장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제공한 보안이 확보된 위성 전화를 통해서 미국 및 서방 지도자들과 통화한다고 CNN 방송이 보도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 ‘스타링크’로 백업 인터넷 통신 제공

게다가, 세계 제일의 부호인 일론 머스크는 1000여 개의 저궤도 위성을 통해 지상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링크(Starlink)’서비스를 2월27일부터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전쟁 초기인 2월26일, 스타링크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우크라이나 디지털 장관의 트윗 요청에, 일론 머스크는 바로 다음날 "서비스 제공 완료"라고 화답했다/트위터 스크린샷

전쟁이 나자, 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장관인 미하일로 포도로프는 2월26일 머스크에게 트위터로 “당신이 화성을 식민지화하려는 동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고 한다고! 당신의 왕복 로켓이 우주에서 지상에 착륙하는 동안, 러시아 로켓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게 쏟아지고!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정신인 러시아인들도 푸틴에게 맞서게 좀 해 주시오”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머스크는 “스타링크 서비스는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사용 가능하고, 더 많은 (수신기) 터미널이 가고 있소”라고 트윗했다.

일론 머스크가 제공한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의 지상 수신 터미널/스타링크

이후 5000개의 인터넷 수신을 위한 안테나 접시 모양의 터미널이 우크라이나에 제공됐고, 이 중 1330개의 터미널 비용을 바이든 행정부가 댔다. 민간 통신서비스가 차단돼도, 통신 단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우크라이나군이 민간 인터넷 통신망과 스타링크로 드론을 조종해, 러시아군 트럭과 탱크를 공격한다”고 보도했다.

◇타이완 침공 고려하는 중국이 배웠을 것

물론 러시아군도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일부 공격을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 사이버사령부의 폴 나카소네 사령관은 지난 5일 미 의회에서 “작년 12월 이후 미국의 전진 추적(hunt forward)팀이 우크라이나에서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활동하며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했고, 러시아 해커들을 물리쳤다”고 밝혔다.

러시아 해커들은 2017년 시스템 데이터를 완전히 파괴하는 ‘낫페트야(NotPetya)’ 웜웨어를 우크라이나에 퍼뜨렸다. 그러나 워낙 강력한 탓에, 나토 국가들과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인터넷 서비스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피해 비용만 1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탓에, 푸틴이 대대적인 인터넷 공격을 자제했을 수도 있다.

미국의 안보 잡지인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중국은 이번에 러시아군이 초기에 단호한 디지털 공격을 하지 않았던 것이 실패의 주요 변수가 됐다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