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의 범위가 보다 ‘공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3일 8억 달러의 신규 군사 지원을 발표하면서, 18문의 155mm 곡사포와 탄약 4000발, 장갑차량, 대(對)테러 작전때 아프간 공군에 제공했던 러시아제 밀(Mil) Mi-17 헬리콥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슬로바키아가 제공한 S-300 소련제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은 이미 지난 주에 우크라이나에 배치됐다. 미국은 T-72 소련제 탱크도 구(舊)동구권 국가들로부터 우크라이나로 보내려고 한다.

서방은 아직 ‘전투기’ 공급은 망설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3월초에도 폴란드가 미그-29기를 제공하려는 것을, 러시아와 나토 간 확전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막았다.
그러나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7일 “베트남 전쟁 때, 미군 전투기 수십 대가 소련제 미그기에 격추된 것을 비롯해 1700여 대가 소련제 무기에 격추됐지만, 핵(核) 수퍼파워 간 전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며 “전투기 공급으로 공동 교전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역사적∙국제법적 관점에서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프랑스는 탱크∙장갑차량도 망설이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전히 “중무기(重武器)를 제공하면 러시아가 나토를 ‘공동교전국’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꺼린다. 독일 연립 정부의 일부 각료도 제공 가능한 수량도 적지만, 같은 이유를 들어 마르더 보병장갑차량(Marder IFV) 지원을 망설인다.
그러나 독일의 마르코 부시만 법무장관은 16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합법적인 자위권(自衛權)을 행사하는 한, 독일이 탱크∙중화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독일이) 전쟁 당사자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 때 미 F-4 팬텀, 소련제 미그기∙지대공 미사일에 382대 격추돼
베트남 전쟁 때, 소련과 중국은 북베트남에 180대의 전투기를 포함해 500여 대의 전투기와 2500대의 탱크, 수만 문의 대포를 경쟁적으로 제공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규모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소련 군사지원단은 직접 지대공 미사일 버튼을 눌러 하노이 상공에서 미국 전투기들을 떨어뜨렸다.
미국 공군의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67대의 전투기가 소련이 훈련한 북베트남군 조종사의 미그기에, 110대는 지대공 미사일에, 1443대는 대공포에 격추됐다. 대부분 소련제 무기였다.
◇”유엔 헌장과 국제법 상, 피침략국에 중화기 제공해도 공동 교전국 안 돼”
이제 우크라이나에선 미국∙러시아가 역할만 바꿔 비슷한 상황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럿거스대의 법학자인 애딜 하크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에 “중무기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교전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교전 당사자가 되려면 군사작전에서 (군인들이 교전하는 것과 같이) 보다 직접적인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3국의 ‘엄정한 중립’이라는 것은 17세기 유럽에서 전쟁이 국가 통치의 한 수단으로서 어느 정도 인정되던 시절에나 요구됐던 개념이라는 것이다.
여러 법학자들은 상대의 도발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을 위법화한 1928년의 켈로그-브리앙 조약과, 이를 반영한 유엔 헌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유엔 헌장은 침략당한 회원국의 자위권을 인정하며, 다른 나라가 중립적 위치를 유지하면서 집단 자위권에 따라 이 피침략국을 돕고 침략국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미 유엔 총회는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자, 러시아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를 했다.
◇푸틴이 국제법 따져서, 서방 군수물자 공격 안 했을까?
많은 안보 분석가들은 또 ‘중립적 위치’니 ‘공동 교전국’이니 하는 법적 용어가 사실 현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푸틴이 나토의 무기 공급 라인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이는 국제법이 아니라 자신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서방이 휴대용 미사일만 공급했기 때문에 푸틴이 공격을 자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가 도발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나토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나토가 탱크를 공급하든 안 하든 이미 공격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소련과 중국이 북베트남과 베트공(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을 대리인으로 앞세워 미군 수천명을 죽이는 현실에서도, 두 나라를 ‘공동 교전국’으로 비난하지 않았다. 핵무장 국가인 소련이나 중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미국 전투기 조종사가 무기를 적재한 소련 화물기에 기총소사를 했다는 이유로 군법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에스토니아의 국방안보 국제센터의 칼레프 스토이세스쿠는 지금의 러시아도 같은 계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러시아가 확전을 원해서 나토를 끌어들이려 했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나토를 겁 주려는 것이지, 나토와 직접 교전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나토는커녕 우크라이나도 다루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서방은 ‘확전 방지’ 목적으로 자체 설정한 나토군 투입 금지라는 ‘레드라인’ 메시지만 러시아에 명확히 전달하면 되며, 러시아가 전투기 공급 등을 제멋대로 ‘레드라인’으로 설정해 서방에 강요하려는 것을 따를 이유는 없다는 주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