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24일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3억2200만 달러(약 4020억원) 규모의 군사 차관을 약속했다. 개전 이래,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액은 34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자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駐美) 러시아 대사는 25일 ‘로씨야 24 TV’ 인터뷰에서 “미국이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쏟아붓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 즉각적인 종결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 공급은 “전쟁 상황을 악화하고,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미 민간 계약업체들, 동구권의 러시아 디자인 무기 공장 훑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무기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재블린∙ NLAW(Next generation Light Anti-tank Weapon)와 같은 첨단 대(對)전차 미사일이나, 스팅어(Stinger)와 대공 미사일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에겐 매일의 전투에서 자신들의 주(主)화기인 AK-47과 같은 칼라시니코프 총기로 발사할 실탄도 똑같이 절실하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런 소총에 쓰일 실탄도 5000만 발 이상을 공급했다. 이들 무기와 탄약은 미국∙나토(NATO)의 무기 표준과 달라, 미 국방부가 ‘비표준(nonstandard)’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뉴욕타임스는 25일 “‘얼트라 디펜스 코프’와 같은 미 국방부와 구매 대행 계약을 맺은 민간 업체들이 루마니아∙보스니아∙세르비아∙슬로바키아∙체코∙불가리아 등 과거 러시아 영향권 하에 있던 동부유럽 국가들의 러시아 디자인 무기 공장을 훑으며 사들인다”고 보도했다. 이들 공장에서 사들여 우크라이나로 보낸 물량이 ‘비표준’ 탄약의 9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대(對)테러 전쟁 지원과 경쟁 무기 성능 파악 위해 러시아 무기 구입
러시아제(製) 헬기와 같이 덩치가 큰 것들은 미국도 사실 적잖게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대(對)테러 전쟁을 수행하면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정규군과 시리아의 반군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대거 사들였다. 이들에겐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소련∙러시아 무기가 더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또 모의 전투∙전술 훈련을 위해, 러시아의 중(重)무기들을 비밀리에 들여오기도 했다.
미 국방부가 2013년 아프간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국영 수출 기업을 통해 MI-17 수송 ∙공격 다목적 헬기를 사들였을 때에는 미 의회는 러시아제 헬기를 산다고 발끈했다. 당시 미 국방부 논리는 러시아 헬기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아프가니스탄 공군에게도 익숙하고, 광활한 사막 지형에도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하면서, 병력 수송 목적 외에도 로켓포와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해 전투 능력을 갖춘 이 Mi-17 러시아제 헬기 16대를 우크라이나군에 넘겼다.
미국은 또 과거에 당시로선 첨단이었던 러시아의 방공(防空)무기 시스템의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SA-8 단거리 전술 시스템과 이보다 작전 반경이 훨씬 큰 중∙장거리 방공 시스템인 S-300 (나토명 SA-10)도 비밀리에 들여왔다. S-300의 경우, 1994년 벨라루스와 당시 1억 달러의 비밀 프로젝트를 맺고 러시아 수송기에 실어 앨라배마주 헌츠빌로 들여왔다. 이 S-300은 현재 우크라이나군에게 넘어갔다.
◇미그-29도 21대 사들여
미국은 1997년엔 F-15, F-16 전투기에 대적할 수 있는 러시아의 미그-29 전투기 21대를 구소련이었던 몰도바에서 사들였다. 몰도바는 모두 34기의 미그-29와 헬리콥터, 수송기 등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구 260만 명의 소국으로선 운영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미그-29 중에는 핵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미그-29C도 14대가 포함돼 있었다. 미국은 몰도바가 미그-29를 이란에 판매할까봐 우려했고, 결국 C형 미그-29 14대를 포함해 모두 21대를 사들였다.
미 해병대는 전술 훈련 목적으로, 러시아의 Mi-24D 헬리콥터와 Mi-17 수송∙공격 헬리콥터도 보유하고 있다. 적(敵)의 헬리콥터는 초음속 전투기보다는, 속도와 고도가 비슷한 헬리콥터로 상대하는 것이 쉽다고 한다. 러시아의 Mi-24D 헬리콥터는 기관포 외에, 유도∙비(非)유토 로켓을 장착했다.
◇우크라이나군, 점차 서방 ‘표준’ 무기로 갈아타
그러나 러시아가 디자인한 무기를 생산하는 동부유럽 국가들은 나토 회원국 여부와 관계없이, 러시아 무기와 탄약 판매를 놓고 푸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전쟁이 내년말까지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점차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군을 미국∙나토 무기로 무장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전쟁 초기만 해도, 미국은 우크라이나군에 서방의 중(重)무기를 지급하고 사용법을 훈련시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민간업체 얼트라 디펜스 코프가 소련의 152mm 곡사포를 찾아 동구권 공장들을 뒤지는 것과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나토 표준 무기인 155mm 곡사포 90문과 18만4000발의 포탄을 우크라이나군에 지급했다. 또 우크라이나군 훈련 교관 50명에 대한 155mm 포 사용법에 대한 훈련도 유럽의 한 국가에서 이미 시작했다.
미국은 또 S-300을 우크라이나로 넘긴 슬로바키아에도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을 공급하고, 이 미사일 시스템의 훈련을 현지에서 시작했다고 8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사용하기까지, 기초 10주∙고급 과정 13주가 소요되며 정상적인 가동을 위해선 90명의 능숙한 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미군 교관들이 달라붙어 수개월 교육∙훈련해야 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시스템의 경우는 우크라이나군에게 공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