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m 테이블 굴욕 -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6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길이 4m짜리 테이블에 마주 앉아 회담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찾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을 앞에 두고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겠다며 러시아를 방문했지만 결과적으로 푸틴이 일방적인 주장을 홍보하는 무대를 제공해준 꼴이 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크렘린궁에서 구테흐스 총장과 1시간 회담을 하고 “우크라이나가 먼저 크림반도와 돈바스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평화 협정에 서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국영 통신이 보도했다. 돈바스 땅 등을 러시아로 완전히 넘기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푸틴은 또 부차의 민간인 대량 학살에 대해서도 “러시아군은 부차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으며, “마리우폴 상황이 복잡하고 비극적이지만 그곳 전투는 끝났다.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완전히 봉쇄돼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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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남에서 구테흐스 총장이 한 발언으로는 “우린 협상 참여자가 아니지만 양국 간 대화를 지지한다”는 정도만 전해져, 푸틴의 일방적 설교를 듣고 온 모양새가 됐다. 유엔 측에선 아무도 배석을 하지 못해 크렘린궁 발표만 받아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엔 대변인은 “두 사람은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아조우스탈의 민간인 대피에 관여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담엔 푸틴이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총리를 만날 때 썼던 길이 4m 테이블이 또 등장했다. 이 초대형 테이블은 푸틴이 코로나 감염을 우려했거나 자신의 건강 정보를 외부에 넘겨주지 않으면서, 권력을 과시하려는 등의 의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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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을 만나기 전 구테흐스 총장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오찬 회담을 했다. 전날 “제3차 대전과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국제사회를 위협한 라브로프는 구테흐스에게 “다른 나라가 양국 간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속 ‘유엔 무용론’을 의식한 구테흐스 총장은 28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