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철도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 침략이 두 달 넘게 계속되는 와중에도 건재를 과시하며 사람은 물론, 무기와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게임체인저급’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열차 편으로 서방 고위 인사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잇달아 방문,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이면서 러시아가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비롯한 유럽 각국 지도자에 이어 지난 24일(현지 시각)에는 미국 외교·안보의 ‘투톱’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기차를 타고 키이우에 도착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했다.
우크라이나 철도공사는 25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5개 기차역을 미사일로 공격, 역과 철도 시설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격으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하는 등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공격받은 곳은 셰페팁카, 코지아틴 등 우크라이나 서부와 남부 지역 기차역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이 제공하는 군사적 도움을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가 철도 인프라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철도는 전체 노선이 2만3000여㎞에 달한다. 독일(4만1000㎞), 프랑스(2만9000㎞)에 이어 유럽 최대 철도 노선 중 하나다. 봄과 가을에 땅이 진창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 현상 때문에 도로망 구축이 늦어지면서 철도가 발달했다. AP통신 등은 “총 1450여 기차역 중 1000여 곳이 문을 열고 피란민과 군인, 보급품을 계속 실어나르고 있다”며 “철도공사 직원들이 포화 속에서 철도 운영과 복구에 헌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돈바스 공격을 앞둔 지난 8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을 폭격해 민간인 57명이 사망했다.
러시아는 핵무기 위협 수준도 높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국영방송에서 “핵전쟁 위험은 실재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런 핵 위험을 일부러 더 키우는 세력이 있어서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3차 세계대전 위험이 실재한다”고도 했다. 미국과 유럽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라’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됐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월 말 직접 ‘핵 전략 강화 준비 태세’를 지시했고, 그의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핵무기를 쓸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핵 위협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프랑스 면적에 맞먹는 지역을 한 번에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의 시험 발사도 했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돈바스 지역 공략에 나선 러시아가 보급 문제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는 분석을 내놨다. 병력과 보급품 수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러시아군 공세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