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마을이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댐 수문을 열어 홍수를 낸 사연을 미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수도 키이우의 북쪽에 위치한 데미디우는 러시아 침공 이틀째인 지난 2월 25일 물에 잠겼다. 우크라이나군이 진격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해 이 지역 인근 아르핀댐 수문을 열어 일부러 홍수를 내는 작전을 폈기 때문이다. 데미디우는 수도 키이우에서 약 45㎞ 떨어진 곳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당시 이 작전이 전쟁 초기 러시아군의 진격을 늦추고 수도 함락을 막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 마을 안에 얕은 호수가 생기면서 러시아 군의 전차가 진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댐 방류로 인해 마을 750가구 중 50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이후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댐이 망가지면서 배수 작업에 차질이 생겼고, 마을은 두 달째 수해복구 중이다.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폈으며, 주민들은 물에 젖은 카펫이나 물건 등을 마당에 널어놓고 말리고 있다. 지하실이 물에 잠겨 피클, 감자 같은 식료품을 건져내는 주민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거나 마당이 온통 진창이라 가느다란 널빤지를 얹어놓고 그 위를 지나다니기도 한다.
살림살이가 전부 망가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 안토니나 코스투첸코는 NYT에 “모두 가 작전을 이해했다. 한순간도 수몰 작전을 후회하는 이는 없었다”며 “우리가 키이우를 구했다”고 말했다.
해당 작전으로 인해 주민들도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군이 호스토멜, 부차, 이르핀 등 다른 외곽지역으로 우회하면서 데미디우에선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았고 대량의 민간인 살상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데미디우 수몰과 비슷한 작전은 더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의 진입을 막거나 작전을 방해하기 위해 키이우 외곽 지역의 교량이나 활주로를 폭파하는 일도 있었다. 올렉산드르 쿠브라코우 인프라장관은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교량 300여 곳이 파괴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