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18일 ‘자폭(自爆) 드론’이란 별명이 붙은 ‘샤헤브-136’을 비롯해 러시아군이 현재 쓰고 있는 이란제(製) 드론을 막을 방어 무기를 이스라엘 정부에 공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이란제 드론으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와 발전 시설 등을 공격하고 있다. 같은 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월10일부터 1주일 사이에 우크라이나 발전소의 30%가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사실 우크라이나는 2월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침공이 있은 이래, 계속해서 러시아군 전투기와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아이언돔(Iron Dome)’의 지원을 이스라엘에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의 처지에는 동정하면서도, 전혀 대공(對空)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주(駐)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대사는 “7개월간 요청하는데도, 늘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답변 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이란의 공격용 드론 개발을 주시해왔다. 오랜 경제 제재로 인해, 공군력이 형편 없는 이란이 돌파구로 찾은 것이 드론 개발이었다. 공격용 드론은 제조 비용이 저렴해, 흔히 ‘가난한 나라의 크루즈 미사일’이라 불린다.
이란은 샤헤브-136을 비롯한 공격용 드론을,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레바논 남부와 시리아 남부의 시아파 무장세력에게 지원해왔다. 또 사우디 아라비아와 싸우는 예멘의 후티 반군에게도 제공했다. 작년 7월 오만 해역에 있던 이스라엘 국적인 소유의 유조선 ‘머서 스트리트’를 침몰시킨 것도 이란제 드론이었다.
지난 7월2일에도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의 무장 정파 헤즈볼라가 조종하는 이란제 드론 3대가 지중해의 이스라엘의 가스전에 접근하는 것을, 함대공 미사일과 전투기 공격으로 격추시켰다고 발표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인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란제 자폭 드론은 샤헤드-136과 소형 버전인 샤헤드-131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드론이 러시아의 민속 악기와 모습이 비슷해 ‘발랄라이카’, 엔진 소리가 비슷하다고 해 ‘모페드(moped)’라고도 부른다.
샤헤드-136의 비행거리는 1000㎞이지만, 영국 국방부는 2500㎞로 소개했다. 50마력짜리 엔진을 달아 최대 시속 185㎞에 불과하지만, 길이 3.3mㆍ날개폭 2.4m로 작고 저속으로 낮게 날아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밀유도무기도 아니고, 자동항법장치도 인터넷 상거래 웹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구할 수 있는 민간용을 탑재했다. 또 고정된 목표물만 맞출 수 있다.
미국 워싱턴 DC의 씽크탱크인 CAN의 드론 전문가인 새무얼 벤데트는 “샤헤드-136의 GPS 유도체계는 재밍에 약해,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것은 비행 거리가 훨씬 짧을 것”이라고 말했다. 샤헤브-136은 대공포(對空砲)나 아파치 헬기의 기관포 공격으로 격추할 수 있다. 그러나 떼로 오면 얘기가 다르다. 지난 1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공격에서도 수십 대의 샤헤드-136 드론이 동원됐고, 결국 28대가 살아남아 40㎏짜리 탄두로 목표물에 ‘자폭’했다. 드론 1대 가격이 2만 달러로 저렴해, 크루즈 미사일이 소진되는 것을 막고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보호해야 하는 러시아로선 값싼 대용품을 찾은 것이다.
◇이스라엘, 값싼 드론 격추할 가성비 높은 ‘아이언 빔’ 개발
이스라엘로서도 이런 ‘싸구려’ 드론을 격추하자고, 한번 쏘는데 5만 달러가 드는 ‘아이언 돔(Iron Dome)’의 요격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전혀 경제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레이저 건(laser gun)으로 드론을 격추시키는 ‘아이언 빔(Iron Beam)’이었다.
지난 4월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아이언 빔’을 발표하며 “레이저는 한번 쏘는데 2~3달러밖에 안 들어, 게임 체인저(game-changer)”라고 소개했다. 지난 7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이언 빔의 후속 개발에 “두 나라가 협력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저 건은 날씨 상태, 출력 규모, 목표물의 거리 등에 따라 요격 성공률이 크게 달라져, 이스라엘은 아이언 돔과 결합해 미사일ㆍ로켓포ㆍ드론 공격을 방어한다는 계획이다.
◇이스라엘, 시리아 영공 순찰하는 러시아 공군 눈치 봐야
이런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의 방어 무기 요청을 외면하는 것은 시리아에 주둔한 러시아 공군력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시리아 남부의 골란 고원이든, 레바논 남부 지역이든 이란의 조종을 받는 세력이 드론ㆍ미사일 공격을 해오면, 수시로 국경을 넘어 공습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4일, 러시아는 시리아 공군과 함께 “골란 고원, 시리아 남부, 유프라테스강, 시리아 북부 등 시리아 영공(領空)을 정기적으로 순찰하겠다”고 발표했다. 수호이 Su-34 공격기, Su-355 다목적 전투기 등 러시아 공군기는 시리아의 흐메이밈 공군기지를 이륙하고, 미그-23, 미그-29가 주축인 시리아 공군은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에서 이륙한다는 것이다.
이들 전투기는 이스라엘 공군의 F-35에는 적수가 안 되지만, 러시아의 발표는 앞으로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러시아는 이전에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공습해도, “요르단을 통해 우회 공격했다”며 모른 척하기도 했었다. 이후 이스라엘에선 앞으로 시리아 공습 필요성이 발생할 때에, 러시아의 반응을 놓고 많은 추측이 일었다.
실제로 지난 5월 이스라엘 공군의 시리아 내 공격에는 시리아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의 S-300 방공 시스템이 처음으로 대응했다는 보도도 나왔고, 7월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의 영공을 침범해 공습하는 행위를 무조건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前) 러시아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이스라엘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매우 무모한 행동으로, 러시아ㆍ이스라엘 양국간 모든 정치적 관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국경 너머 존재하는 이란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러시아의 비위를 거스르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섣불리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