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우크라이나의 독일제 레오파르트 2 탱크 지원 요청에 대해 계속 미국 M1 에이브럼스 탱크의 우크라이나 동시 지원을 조건으로 내건 가운데, 폴란드는 22일 “독일이 참여하든 안 하든, 현대식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기부하려는 나라들로 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폴란드의 마에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피 흘려 죽는 것을 수동적으로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럽과 나토(NATO) 동맹국에는 약 2000대의 레오파르트 2 탱크가 있다.

작년 9월29일 라트비아의 아다지 훈련기지에서 전개된 나토군의 실버 애로우 훈련에서 스페인군의 레오파르트 2 전차가 불을 뿜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독일의 안나레나 배어복 외무장관은 이날 프랑스 TV 인터뷰에서 “폴란드가 레오파르트2 탱크를 보내겠다고 하면 이를 막지 않을 것”이라면서 “아직 폴란드의 공식적인 (제3국 지원 허용)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독일이 주도해 러시아에 ‘확전’하는 듯한 모양새를 꺼려, 유럽 국가들이 이 탱크를 제3국(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것을 승인하지 않고 미국도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보다는 다소 전향적인 발언이다.

작년 2월 24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가장 회자된 이미지들 중의 하나는 싸구려 드론이 떨어뜨린 폭탄이나 미사일, 정밀무기 공격에 포탑(turret)이 하늘로 치솟는 등 맥없이 주저앉고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들이었다.

튕겨져 나간 T-72 탱크의 포탑. 러시아 탱크는 탄약고가 포탑 아래 전차병들의 좌석 밑에 배치돼 있다. 대전차 무기가 탱크의 취약 부분인 옆을 관통해 한 두 개 포탄만 터뜨리면 탄약고 전체가 터지면서 전차병들은 목숨을 잃고 포탑은 마치 장난감 상자 속에서 용수철 달린 인형이 튀어나오듯이 튕겨져 나간다. /트위터

네덜란드의 전쟁 리서치 그룹인 오릭스(Oryx)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렇게 이번 전쟁에서 주력으로 나선 T-72, T-80을 비롯해 1450대가 넘는 탱크를 잃었다. 900대는 파괴됐고, 나머지는 러시아군이 버리고 퇴각했다. 이 탓에, “현대전에서 탱크의 시대는 갔다”는 말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우크라이나 군의 주력 탱크도 T-72다. 우크라이나도 450대가 넘는 탱크가 파괴됐다. T 다음에 붙는 숫자는 이 탱크의 배치 연도를 뜻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병사들의 나이보다도 배(倍)나 연식이 오래된 구식 소련제 탱크로 싸운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가 시급하게 지원을 요청하는 현대적 탱크는 이 소련제 탱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우크라이나군이 가장 선호하며 300~400대 지원을 강력히 원하는 독일의 레오파르트2 탱크,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영국이 지난 17일 14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한 챌린저 2 탱크는 대전차 공격에 대한 센서와 장갑(裝甲) 능력, 적의 미사일에 대한 능동적 방어 능력이 보강됐고, 포의 사정거리와 정확도, 기동성이 탁월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점령지역인 돈바스에 일부 배치한 것으로 알려진 최신 탱크 T-14. /위키피디아

게다가 작년 12월25일 러시아 TV는 “러시아 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의 최신 탱크인 T-14 아르마타 20대가 목격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T-14 아르마타는 2015년 러시아군 퍼레이드에서 외부에 처음 공개된 러시아의 새 주력 탱크다.

미카일로 포돌리야크 우크라이나 정부 보좌관은 20일 CNN 방송에 “300~400대의 독일 레오파르트 2 탱크만 있으면, 소련 시절의 탱크 2000~3000대를 압도할 수 있다”며 “전쟁의 템포를 가속화해 이 전쟁의 마무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100대의 레오파르트 2만 있어도, 전황(戰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은 양측이 다소 소강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거점 도시 헤르손에서 퇴각한 뒤 우크라이나를 양분하는 드니프로 강 동쪽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수 겹으로 참호를 설치했다.

우크라이나가 수백 ㎞에 걸친 이 러시아 방어선을 뚫으려면, 현대적 탱크가 필수적이다. 특히 평원 지역인 남부는 탱크전에는 이상적인 지형이다. 우크라이나군으로선 탱크와 연료, 포탄 등을 비축하고 장거리 정밀 포사격으로 러시아군의 후방 보급로와 증원군 루트를 차단하면서 러시아 방어선을 돌파해야 한다.

미국과 나토(NATO)는 그동안 우크라이나군에게 제공하는 무기를 ‘방어’적 성격에서 ‘공격’으로 계속 전환해 확대했지만, 탱크 지원은 거부했다. 러시아에게 ‘확전’으로 비치는 것을 꺼렸다. 영국은 지난 17일 자국이 주력 탱크 챌린저 2를 14대 공급하겠다며, 이 심리적 저항선을 깨려고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실제 원하는 것은 독일의 레오파르트 2 탱크다. 적의 포ㆍ미사일 공격에 대한 반응 장갑을 갖추고, 징집병도 가동, 유지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에이브럼스 탱크가 구하기 힘든 제트유를 쓰고 조작이 쉽지 않은 것과 달리, 레오파르트 2는 디젤유를 사용하고, 영국의 챌린저 2보다도 신뢰성이 높다고 한다. 또 이미 유럽의 NATO 국가에 2000대가 보급됐고, 독일에도 350대가 있어 부품 생산 라인이 확고하고, 탱크를 관리할 전문가 풀(pool)도 풍부하다.

우크라이나도 소련제 탱크는 많다. 러시아군으로부터 지금까지 500대 이상의 탱크를 노획했고, 폴란드ㆍ체코로부터 240대의 T-72 탱크를 지원 받았다. 그러나 그만큼 많이 잃어, 유럽의 대외관계외원회는 한 달에 최대 130 대 가량의 우크라이나 탱크가 파괴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또 시간적 여유가 없다. 작년 가을에 징집한 15만 명의 러시아군 신병이 훈련을 마치고, 3월이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다. 러시아군의 춘계 대공세가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로선 그 전에 서방의 현대식 탱크로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을 돌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