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독일이 결국 자국이 보유한 최신 주력 탱크를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러시아의 고민은 깊어진다.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 탱크인 T-72, T-80는 물론, 그나마 최신이라는 T-90까지도 서방의 재블린(Javelin) 대전차 미사일과 값싼 드론이 투하하는 폭탄에 속수무책으로 파괴됐다. 러시아 탱크 시리즈에서 T는 ‘탱크’를, 숫자는 해당 탱크가 배치됐거나, 배치가 승인된 해를 뜻한다.
러시아에는 아직 ‘카드’가 남아 있다. T-14 아르마타(Armata)라는 신형 탱크다. 대(對)전차 로켓을 방어하는 능력과 고감도 센서, 드론, 데이터 소화 능력, 고도의 자동화 기능을 갖췄다고 한다. 2015년 5월9일 러시아의 제2차대전 승전(勝戰)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처음 공개됐다.
서방에서 추정하는 작년 말 생산 단가는 710만 달러(약 87억원). 계획대로라면, 러시아는 2015년~2020년 사이에 2300대의 T-14 최신 탱크를 생산해야 했다.
그러나 영국 국방부는 현재 러시아군이 기껏해야 수십 대의 T-14 탱크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한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까운 러시아 남부의 한 훈련 기지에서 작년 말에 포착된 T-14 탱크 2대의 민간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이 T-14 탱크가 포착된 기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집결했던 장소들 중 한 곳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최신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하더라도, 치열한 전장(戰場)에는 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19일 정보 업데이트에서 “최신형 T-14 몇 대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할 수 있으나, 그 수는 제한적이고 주로 선전 목적”이라며 “배치한다면, 매우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국방부는 오랜 지연 끝에 개발에만 11년이 걸리고, 애초 계획보다 생산량도 줄고 오작동(誤作動)과 같은 여러 이슈가 불거졌던 이 최신 탱크의 전투력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기존 T 시리즈의 탱크보다 더 크고 무거운 이 탱크를 전장에서 운용하려면 관련 병참 체계도 새로 구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전문가인 가이 플로프스키는 “T-14를 본격 배치하는 것은 (이 탱크가 파괴된 사진이 미칠 러시아 국내 악영향 등)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최첨단’이라고 공표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장에는 투입하지 않는 무기는 또 있다. 러시아 공군이 보유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라는 SU-57 다목적 전투기다. 서방에서 ‘펠런(Felon)’이라고 부르는 이 전투기는 2010년에 첫 비행을 했다.
이 전투기 역시 2025년까지 150여 기를 생산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지금까지 몇 대나 생산됐는지는의문이다. 서방 언론은 기껏해야 10여 대 수준으로 보도한다. 러시아 공군에 처음 인도된 것이 2021년 12월로, 타스 통신은 “2024년까지 러시아 공군이 22대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는 지난 9일 러시아 남부 아크투빈스크 공군 기지에 세워진 SU-57 전투기의 사진을 공개하며 이 전투기가 작년 6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전투기도 우크라이나 영공을 침범하지는 않는다. 스텔스기인데 격추 당하는 것이 두려워, 주로 영공 밖에서 공대공,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한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이 전투기가) 격추돼 민감한 기술이 훼손되고, 수출 전망이 어두워지고,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피하는데 주력하는 듯하다”며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공중전에서 계속 보여온 ‘리스크(risk) 회피’ 증상”이라고 밝혔다.
서방 전문가들은 SU-57의 스텔스 능력도 의문한다. 이 전투기가 5세대 스텔스 기능을 갖추기 위해 디자인부터 새롭게 한 것이 아니라 기존 러시아 전투기의 프레임을 응용한 것이라, 미국의 F-22, F-35처럼 레이더 스크린에서 포착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