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하기 위해 수도 키이우 기차역에 도착해 내리고 있다./로이터 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은 미군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고, 러시아 전투기의 이륙을 알리는 공습 사이렌이 키이우에서 울리는 가운데 이뤄졌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동안, 우크라이나와 접한 폴란드의 동쪽 국경 하늘에는 미국의 E-3B 센트리(sentry) 조기경보기(AWACS)와 공중급유기 KC-135R 스트래토탱커가 떴다.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중에, 폴란드 동쪽 국경 상공에 뜬 조기경보기, 보잉 E-3B 센트리의 항로 궤적을 보여주는 그래프./aviationsourcenews.com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방문은 첩보영화를 연상케 하는 준비 속에 진행됐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 언론이 20일 보도했다.

◇잠자리에 든 줄 알았던 바이든, 자정 넘어 살짝 나와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24) 1년이 가까워오면서, 수 개월전부터 키이우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금요일이었던 17일에 내려졌다. 바이든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안보 관련 참모들과 일정을 논했고, 일부는 통화로 협의했다.

바이든은 미군이 없는 전쟁 지역이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미국내 전쟁 지원 노력을 부추기고, 서방 동맹 세력에게 활기를 넣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선 자신의 수도 키이우 방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이든과 그의 이너서클(inner circle)은 바이든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수도 키이우에서 만나 포옹하는 강력한 이미지는 그럴만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풀기자에게 보낸 안내 이메일 제목은 “골프 여행 도착 후 지침”

이후 백악관 측은 풀(pool) 기자가 될 월스트리트저널과 AP 통신의 두 기자에게 미리 연락해서, 보안 유지를 당부하며 여행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다. 추가 안내 사항은 “골프 여행 도착 이후 지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찾아 보라고 했다.

이 극비 작전에서 바이든도 약간의 역할을 했다. 토요일인 18일 바이든 부부는 조지타운대 미사에 참석했고, 미 국립역사박물관의 전시관을 찾았다. 이후 파스타로 유명한 워싱턴 DC의 레스토랑 레드 헨(Red Hen)에서 리가토니를 먹고,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20일 바이든 대통령 일행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도착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이후 사람들은 대부분 바이든 부부가 잠자리에 들었으리라고 짐작했지만, 바이든은 자정을 약간 넘겨서 백악관을 빠져나왔다. 워싱턴 DC의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앤드루스 합동기지로 향했다. 백악관 보좌진 중에선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젠 오말리 딜런 비서실 차장 등 3명만 동행했고, 이밖에 백악관 사진사와 의료 인력, 안보 관련 직원이 따랐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대통령이 종종 비공개 여정을 포함할 때에는 기존 여행 계획의 끝에 추가하는데, 이번엔 바르샤바 일정의 맨 앞에 넣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22일 양일 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9개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기로 돼 있었다. 오래 전에 예고된 일정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계속 일었지만, 백악관은 부인했었다.

콜사인이 ‘에어포스 투(Airforce Two)’인 C-32 대통령 전용기는 으레 대통령이 탑승할 때 사용하는 타막(tarmac)이 아닌 곳에서 어둠 속에서 바이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 국내선 여객기로 많이 쓰이는 보잉 757-200을 개조한 C-32는 1.5㎞ 남짓한 길이의 활주로에서 이착륙을 할 수 있다. 재급유 없이 5500마일(약 8800㎞)을 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주로 부통령과 퍼스트레이디, 장관, 의원들이 애용한다고 밝혔다.

C-32는 오전4시15분 이륙해, 22시간 여에 걸친 우크라이나 키이우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이 전용기는 독일 람슈타인 나토 기지에서 재급유를 위해 1시간 15분 머물렀고, 오후7시57분(현지시간) 폴란드의 국경 근처 제슈프-야시온카 공항에 도착했다. 바이든의 차량 행렬은 20대 정도였지만, 사이렌 없이 1시간 가량 국경 기차역 프레미실로 달렸다.

2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폴란드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 연설문 준비를 하고 있다. 앞은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 보좌관./ 로이터 뉴스1

◇미국, “충돌해소 목적”으로 러시아에 방문 수시간 전 통보

백악관 측은 “우크라이나 방문 수시간 전에, ‘충돌 해소(deconfliction) 목적’으로 러시아 측에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 계획을 통보했다. 통보 채널과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되지 않았다.

8개량의 기차로 폴란드의 프레미실 기차역을 출발한 바이든 일행은 밤 10시쯤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고, 10시간을 달려 키이우-파사지르스키 역에 도착했다. 미 언론은 이 기차는 추가로 보안 인력을 태우기 위해 몇 차례 정차했지만, 깜깜해서 밖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바이든이 우크라이나에 있는데도, 백악관은 “워싱턴에 있다” 거짓말

백악관은 바이든 일정의 보안 유지에 극도로 신경을 써, 워싱턴 DC에 있는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미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지 4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으며, 월요일(21일) 저녁이 돼서야 유럽으로 떠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오전8시, 키이우 역에 도착한 바이든 일행을 브리짓 브링크 미국 대사가 맞았다. 이후 5시간 동안 키이우에 머물면서, 바이든은 대통령궁에서 젤렌스키를 만났고, 두 지도자는 황금 돔(dome)의 성 미카엘 수도원 광장의 우크라이나 전사자를 기리는 추모 벽 앞에 헌화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 오전 수도 키이우의 성 미카엘 성당-수도원 밖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전사자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때 두 정상의 사진이 전세계에 배포됐고, 보도금지 요청도 풀렸다. 두 지도자가 수도원을 걸을 때에, 공습 사이렌이 울렸다. 이 사이렌은 미사일을 탑재한 러시아 전투기가 러시아 본토에서 이륙했다는 경보였다.

바이든 일행이 키이우를 떠나, 다시 폴란드의 국경 역인 프레미실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45분. 거의 만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