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서방에서 잔뼈가 굵은 러시아의 30대 ‘신세대 경제통’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밀 병기’로서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월스트리트 등 금융권 경력을 바탕으로 젊은 나이에 자국 요직을 꿰찬 이들이 서방 제재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푸틴의 에너지 분야 비밀 병기: 전 모건스탠리 은행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재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인 파벨 소로킨(37)을 집중 조명했다. 영국계 회계법인 언스트앤드영(EY)의 모스크바 지사에서 회계사로 경력을 시작한 소로킨은 런던대에서 금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건스탠리 모스크바 지사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 각종 금융 전문 매체가 선정한 러시아·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석유·가스 부문 최고 애널리스트에 선정됐다. 당시 에너지부 장관이자 현재 부총리인 알렉산드르 노박에 의해 발탁된 소로킨은 에너지부에서 산유국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의 밑그림을 그렸다. 러시아는 오펙플러스를 통해 원유 감산 목소리를 내며 미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푸틴은 소로킨을 2018년 에너지부 차관으로 승진시켰다.
소로킨은 최근 중국·인도로 한정된 원유 수입국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콩고민주공화국을 찾아 625마일(약 1000㎞), 8억5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의 송유관 건설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달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휘발유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WSJ는 보도했다.
막심 오레시킨(41)도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서 러시아 정부에 서구식 해법을 제시하는 ‘젊은 경제통’으로 꼽힌다. 프랑스 은행 크레디트에그리콜 경력을 바탕으로 2016년 34세 나이에 경제개발부 장관으로 낙점된 그는 2020년부터 푸틴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펙플러스 자문회의에 러시아 대표로 참석하는 데니스 데류시킨(35)은 뱅크오브아메리카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알렉세이 사자노프(39) 재무 차관은 옥스퍼드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밟고 소로킨과 함께 EY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케이플러(Kpler)의 수석 원유 분석가인 빅토르 카토나는 “적잖은 우크라이나 동맹국들이 서구식 교육을 받은 크렘린궁 내 신세대 의사 결정권자들의 전문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신세대 경제통들이) 서방 제재의 영향을 무디게 하는 ‘비밀 병기’가 됐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