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첨단 방공 시스템 중 하나인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이래, 러시아가 음속(音速)의 10배로 날아가 타격해 요격할 미사일이 없다는 킨잘(Kinzhal) 극초음속 미사일 간에 ‘흥미로운’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대결은 두 차례였다. 지난 4일 밤 러시아는 킨잘 1기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시스템을 겨냥해 공격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과 미국 정부 관리들이 CNN 방송과 뉴욕타임스 등에 밝힌 바에 따르면, 되레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에 당했다.

두번째는 16일 오전3시30분(현지시간)쯤에 있었던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이었다. 러시아는 6기의 킨잘과 흑해 전함에서 발사한 9기의 칼리브르(Kalibr) 순항 미사일, S-400 탄도 미사일 등 모두 18기의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러시아 영토 내에서 6대의 미그-31가 6기의 킨잘을 발사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16일 우크라이나와 미국 관리들을 인용해, 러시아가 보유한 가장 정교한 미사일인 킨잘 6기를 모두 요격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18기 미사일 모두 요격했다고 발표했다.

16일 새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이뤄진 가운데, 키이우 상공에서 미사일 하나가 폭발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인권기구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 보낸 동영상 연설에서 “테러 국가(러시아)가 자랑하는 것(킨잘)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18기가 우리 영공에 왔으나, 100% 격추됐다. 역사적인 결과”라며 “우리는 패트리어트가 (킨잘을 막기엔) 비현실적일 것이란 얘기를 들어왔지만, 오늘 패트리어트는 해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항공기ㆍ탄도미사일ㆍ순항미사일을 방어하는 데 뛰어난 패트리어트가 러시아의 킨잘과 같은 극초음속 미사일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따라서 패트리어트가 킨잘을 막아냈다면,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에 또 다시 한 방을 먹이는 것이 된다. 또 우크라이나의 방공 능력이 서방이 제공한 방공 시스템으로 대폭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 육군의 제10 방공미사일방어사령부가 보유한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 우크라이나는 4월19일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서방으로부터 받았다./AP 연합뉴스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무기고와 민간인 지역을 파괴하는 등 수 차례 킨잘을 발사했었다. 작년 3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킨잘 발사를 확인하며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무기(a consequential weapon)로, 막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킨잘이 패트리어트에 막혔다는 것이다.

물론 16일 러시아의 킨잘 1기는 키이우의 우크라이나 공군 기지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미사일 포대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최소 1기의 킨잘이 미국의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을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2명의 미국 관리는 CNN 방송에 “패트리어트 포대가 일부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에 대한 초기 결론은 현지에서 보수가 가능하고 지금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포함해 모든 종류의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킨잘의 능력, 과장됐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킨잘을 놓고, 러시아의 첨단 무기 중에서도 핵심적인 전략적 우위를 제공하는 무기라고 주장해왔다. 푸틴은 2018년 3월에 방어가 불가능한 러시아의 차세대 무기 6종(種) 중 하나로 킨잘을 소개하며 “지금 있는 것이나 미래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모두 뚫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공군의 미그-31K에 탑재된 킨잘. 2018년 5월9일 러시아의 나치 독일 승전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AP 연합뉴스

러시아어로 ‘단검(dagger)’이란 뜻인 킨잘(Kh-47M2)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M 지대지 미사일을 전투기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변형한 버전이다. 러시아 주장에 따르면, 킨잘은 480㎏의 핵 또는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며 사정거리가 2000㎞가 넘는다.

킨잘과 같은 극초음 무기가 막기 힘든 것은 시속 1만2160㎞에 달하는 빠른 속력(음속의 10배 이상)과, 경로를 예측할 없는 변칙적인 기동(機動)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패트리어트가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즉, 패트리어트의 레이더가 이를 제때 포착해서 방공 시스템으로 대응하기에는 킨잘이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킨잘을 ‘극초음속 미사일’로 보지만, 킨잘이 모든 비행 구간을 극초음속으로 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서방 군사 분석가들은 킨잘의 변칙적인 기동성 능력에도 의문을 갖는다.

◇”공대지 탄도 미사일에 불과” 평가 절하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에 있는 제임스마틴 비(非)확산 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미국의 과학기술 웹사이트인 포퓰러 미캐닉스에 “킨잘은 공대지 탄도 미사일에 불과하다”며 “킨잘이 극초음속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탄도 미사일이 극초음속이라고 볼 때나 맞는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미니트맨 III는 최고 속력이 음속의 23에 달한다.

킨잘은 또 러시아가 2006년부터 배치된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9K720)을 전투기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변형한 것이다. 이스칸데르는 탄도를 벗어나서 약간의 자의적인 코스 변경을 해 방어하는 측에선 요격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정도의 코스 변경을 갖고, ‘자유로운 변칙 기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루이스 박사는 “이 정도는 코스 변경은 미 육군의 ATACMS 전술 지대지 미사일도 하며, 결코 독특한 특성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대 사정거리가 300㎞인 ATACMS는 한국군과 주한미군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계속된 요청에도 러시아 영토를 타격할 수 있는 ATACMS는 제공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음속의 5배 이상 속력에서, 약간의 코스 수정이 아니라 자유롭게 기동이 가능해야 극초음속 미사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킨잘이 음속 10배라는 주장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킨잘의 모체(母體)인 이스칸데르가 최고 음속의 5.9인데, 어떻게 같은 엔진을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킨잘이 음속의 10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짜 맞았나?

우크라이나가 6기의 킨잘을 모두 요격했다고 주장하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16일 오후 이를 부인하며 “매번 그들이 요격했다고 주장하는 수만큼 킨잘을 발사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킨잘이 격추됐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를 “기술적인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 독일 매체 빌트에 보여준 킨잘의 잔해라는 동영상도 오히려 ‘킨잘 요격’의 진실 게임을 부채질했다. 이 동영상을 본 군사전문가들은 이건 킨잘이 아니라, 콘크리트 구조물을 관통하는 러시아 폭탄인 BETAB 500이라고 주장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 16일 우크라이나 공군이 요격한 러시아의 킨잘(Kh-47) 극초음속 미사일 잔해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일부에선 이건 킨잘이 아니라, 콘크리트 관통 폭탄이라는 분석도 제기했다./로이터 연합뉴스

일부에선 극초음속 미사일이 패트리어트에 요격됐다면, 이런 잔해가 생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국의 한 군사 전문 웹사이트는 “이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패트리어트의 버전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PAC-2는 근접하는 적의 미사일 가까이에서 수많은 파편(shrapnel)을 터뜨리며 폭발해, 킨잘의 동체를 산산조각으로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100% 증명할 수는 없지만, 4일 밤의 킨잘 격추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발표는 설득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어트 2개 시스템 배치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4월 19일 미국이 제공한 것과, 독일ㆍ네덜란드가 함께 제공한 시스템 등 2개의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배치돼 있다. 16일 새벽 러시아의 킨잘에 피해를 입은 것이 어느 나라가 제공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부터 패트리어트 시스템 제공을 미국에 강력히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미국은 이 방공 시스템의 운용을 위한 훈련이 너무 오래 걸려 실효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우크라이나의 방공 자산이 고갈되면서 패트리어트 제공을 결정했고, 이를 운용할 우크라이나군을 미국에서 10주간 집중 훈련시켰다.

워싱턴 DC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발사대는 대당 1000만 달러, 요격 미사일은 약 400만 달러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패트리어트의 강력한 레이더는 아주 먼 곳에서 오는 타깃을 탐지할 수 있지만, 이때 방출하는 레이더는 적(敵)이 패트리어트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 CNN 방송은 “미 관리들은 지난 4일 킨잘이 패트리어트를 노린 것은 이렇게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다른 이동형 방공 시스템과 달리, 패트리어트는 규모가 크고 이동이 쉽지 않아 러시아가 조준 타격(zero-in)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패트리어트는 레이더와 지휘ㆍ통제소, 안테나, 발사대, 요격 미사일, 발전기 등 모두 6개의 구성 요소로 이뤄진다. 16일 킨잘의 공격으로 발생한 피해는 이 중 일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