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각) 화상으로 진행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해 “서방의 제재와 도발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이 주축인 지역 정치·경제·안보 협의체다.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 이후 처음으로 다자 외교 무대에 등장한 푸틴 대통령이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서방에 맞서 SCO 회원국 간 밀착이 더욱 견고해지리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인도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푸틴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 정상들과 화상 회담을 가졌다. 인도는 올해 회의 의장국이다.
푸틴은 회의에서 SCO 회원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계획이며 대외 무역에서 현지 통화 결제로의 전환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원국들이 힘을 합쳐 미국 달러 중심의 현재 질서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시진핑도 SCO 회원국들의 결속을 강조했다. 기조연설에서 “지역 평화를 지키고 공동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SCO 회원국이 올바른 방향을 따르고 연대와 상호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호주의와 일방적인 제재, 국가 안보 개념의 확장에 반대한다”며 “국제적, 지역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확고한 지역 안보 장벽을 구축해야 한다”고도 했다.
푸틴의 외교무대 등장은 지난달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 이후 10일 만이다. CNN은 “푸틴은 이번 회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보여주고, 동맹국과 전 세계에 자신이 통제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SCO에서 러시아와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중국의 ‘지원 사격’은 푸틴에게 큰 힘이 될 전망이다. 마쓰다 야스히로 일본 도쿄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CNN에 “현재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밀리고 있고 이런 상황을 중국이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은 상당히 곤란할 것”이라며 “시진핑도 자국에 자신의 권위와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친밀함을 내세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 국가들 입장에서 SCO는 나토로 대변되는 서방에 맞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다. 파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이 회원국이다. 이란은 2005년부터 옵서버(참관인) 자격으로 참가하다 이날 회의에서 정회원이 됐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일관되게 편들어온 벨라루스 또한 옵서버 자격으로 SCO에 참석해오다가 이번 회의 때 정식 가입 신청서를 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서방과 권위주의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인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SCO 회원국은 미국과 긴장 관계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