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사진 가운데)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국가방위군 및 보안군 대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반란’ 사태를 일으킨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오른쪽 사진)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음성 메시지에서 “푸틴에 대한 반란이 아니었다”라고 했다. /로이터 뉴스1·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장 반란을 일으켰던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을 지난달 29일 직접 만났다고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이 10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이날은 프리고진이 처벌 취소와 벨라루스 망명을 조건으로 하루 만에 반란을 중단한 지 닷새 만이다. 사실일 경우 프리고진이 푸틴의 진노를 피해 벨라루스에 머물렀다는 기존 관측과는 맞지 않는다. 일각에선 프리고진의 사망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서방 정보기관들은 크렘린궁이 뒤늦게 두 사람의 만남 사실을 공개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출입 기자들과 정례 전화 브리핑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며 “이날 만남에는 프리고진뿐만 아니라 바그너그룹 지휘관 등 35명이 함께 초대됐으며 회동은 3시간 동안 진행됐다”고 전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당시 사건에 대한 그의 평가를 밝혔고 같은 사건에 대한 바그너 지휘관들의 설명도 청취했다”며 “바그너 지휘관들이 푸틴 대통령에게 그들은 대통령의 지지자이고 병사들은 여전히 대통령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크렘린궁 측은 그러나 이들의 만남을 증명하는 사진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 크렘린궁이 프리고진과 푸틴 대통령의 회동 사실을 밝히면서 프리고진의 향후 거취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프리고진은 현재도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 상태다. 여기에 그의 행방에 대한 엇갈린 발언과 추정이 나오면서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더욱 증폭되기만 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반란이 중단된 당일 “프리고진이 벨라루스로 오게 될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사흘 뒤인 27일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선 “프리고진은 벨라루스에 없다”며 “이날 오전까지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지만 지금은 아마 모스크바나 다른 곳으로 갔을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러시아의 한 대중지가 프리고진을 닮은 러시아인이 헬기에 탑승하는 사진을 보도하면서 프리고진이 러시아 당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변장한 채로 러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러시아 보안 당국이 지난 5일 프리고진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을 급습, 옷장에 수북이 쌓인 가발과 개인 앨범 속 프리고진의 변장 사진들을 확보해 공개하면서 이러한 의혹이 더욱 커졌다.

크렘린궁이 푸틴과 프리고진의 만남을 공개한 이유를 두고 “반란 사건 이후 러시아 권력층의 동요가 예상보다 큰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푸틴이 프리고진을 처단할 경우 이른바 ‘프리고진 네트워크’로 연결된 러시아 정부 내 고위층과 경제인들이 대거 반(反)푸틴 대열에 가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5만여 명에 달하는 바그너그룹 용병의 통제가 불가능해질 위험도 커진다. 결국 푸틴이 반란 후 ‘숙청’을 최소화하면서 당분간 기존 체제의 안정을 꾀하려 한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로이터는 “(프리고진이 처단을 요구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도 이날 반란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