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8일, 무려 3800m 떨어져 있는 러시아군 장교를 저격총으로 살해해 전세계 최장 저격 기록을 경신한 우크라이나군 저격수의 신원이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그의 신원이 공개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저격수는 사업을 하던 58세의 뱌체슬라프 코발스키로, 코발스키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첫날 우크라이나보안국(SBU) 요원으로 재입대했다고 보도했다.
3800m는 서울의 한남대교(919m)를 2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로, 코발스키가 쏜 특수 저격용 총알이 날아가는 데만 9초가 걸린다고 한다. 그의 저격 성공 거리는 지금까지 최장이었던, 2017년 캐나다 특수부대원이 이라크에서 세운 3535m보다도 265m 더 멀다. WSJ는 저격 당시 상황에 대한 코발스키 인터뷰와,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입수한 저격 동영상에 대한 미 전문가들의 분석도 소개했다.
지난달 18일, 코발스키와 그의 저격을 돕는 감적수(監的手ㆍspotter)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수 시간째 누워 우크라이나 동부의 드니프로 강변에서 강 너머 러시아군 움직임을 관측했다. 하지만, 하급 병사로 추정되는 러시아 군인들이 벌목하는 것만 목격될 뿐이었다. 그리고 정오쯤 5명의 러시아군 병사가 나타나고 장교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몸짓을 섞어가며 이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 관측됐다.
감적수가 곧 계산에 들어갔다. 레이저로 거리를 재고, 특수 소프트웨어와 풍속ㆍ풍향ㆍ습기ㆍ기온 등의 기상 데이터, 지표면의 곡면도 등을 계산해서 코발스키가 이 거리에서 조준해야 할 지점을 계산했다. 당시 풍속은 탄환 궤도가 타깃 지점에선 약 61m 빗겨갈 정도였다. 이런 장거리 저격에선 또 총탄이 지구의 중력에도 영향을 받는다. 9초 간 날아가는 탄환은 중력에 의해 조준점보다 아래로 향하게 된다. 또 지구의 자전 때문에, 탄환이 도착할 즈음엔 타깃의 위치도 미세하게 이동하게 된다.
코발스키가 쏜 첫발은 러시아 장교로부터 약 100m 떨어진 곳을 겨냥해서 쐈지만, 빗나갔다. 풍속 계산이 잘못됐다. 감적수가 신속하게 다시 계산했고, 코발스키가 쏜 두번째 총탄은 러시아 장교의 위치보다 100m 위 상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그의 오른쪽 가슴을 맞췄다. 방아쇠를 당긴 지 9초 뒤였다. 코발스키는 WSJ에 “바람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적수는 망원경으로 러시아 장교의 몸이 접히면서 고꾸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때쯤 이미 코발스키는 저격총 장비를 챙겨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코발스키가 사용한 저격총은 ‘볼로다르 오브리유(지평선의 군주)’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제 저격총으로, 총신은 미국 총기회사 것이고 조준경은 일제(日製)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머지 부품은 모두 우크라이나산이고, 총탄도 일반적인 저격총 총탄보다 훨씬 큰 길이 15.7㎝의 우크라이나산이다.
평원에서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장(戰場)은 저격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코발스키 팀의 명중 장면은 동영상 녹화됐고, 코발스키와 우크라이나군 저격수들은 ‘치명적’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우크라이나산 저격총과 총탄으로 ‘최장 저격 성공’ 기록을 세웠다는 우크라이나군의 발표는 사기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
WSJ은 ”저격 전문가들의 세계에선 ‘성공’에 대해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 저격수는 WSJ에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저격 장비를 갖고 저격에 성공할 수도 있다”면서도 “일반적인 저격에선 계량화하기 힘든 변수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거리가 1300m를 넘어가면 기술이라기보다는 행운에 가깝다”고 말했다. 미국의 탄도 전문가인 브래드 밀러드는 “영상에 나타난 9초의 총탄 궤도 타이밍은 정확하다”면서도 러시아 장교가 살해됐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코발스키는 “온라인 상에서 나의 저격 성공을 의심하는 이들은 캐나다군 저격수가 사용한 탄환을 고려한 것 같다”며 “내가 사용한 총탄은 더 강력한 장약을 넣을 수 있어서 더 빨리 날아, 러시아 장교가 생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사실 코발스키의 사격 실력은 단지 저격수 출신으로 재입대한 예비역의 수준이 아니다. 그는 지난 수십 년 간 유럽과 북미의 장거리 사격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했다. 또 감적수와도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 사격 대회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한편, 저격수들은 전장에서 돌아온 뒤에 종종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고향에서 ‘영웅’으로 환영을 받은 뒤에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국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했던 미 해군특수부대 네이비실(Navy SEAL)의 이라크 전쟁 저격수였던 크리스 카일도 제대 후 한동안 PTSD를 앓았고, 결국 또다른 PTSD 환자였던 해병대 출신 전역자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코발스키는 WSJ에 “러시아군을 죽이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도(not a gram) 마음에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이제 우크라이나군이 뭘 할 수 있는지 알게 됐을 것”이라며 “집안에 앉아서도 떨게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