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새벽 러시아 대통령으로선 24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평양 순안 공항에서 만났을 때 눈길을 끈 것은 두 사람이 함께 탈 차량 앞에서 서로 먼저 타라고 양보하는 모습이었다.
붉은 카펫을 따라 걸어 나온 두 사람은 제1 터미널 앞에 세워진 러시아판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아우루스 세나트 앞에서 이르러 서로 먼저 타라고 ‘한동안’ 양보했다.
러시아의 국영 매체인 스푸트니크가 공개한 21초짜리 영상을 보면, 러시아측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리무진의 오른쪽 뒷좌석의 문을 열자 푸틴은 김정은에게 먼저 타라고 손짓을 한다. 그러나 김정은은 푸틴에게 먼저 타라는 손짓을 했고, 8초가량 두 사람은 말없이 계속 서로에게 손을 들어 먼저 타라고 권한다. 결국 71세의 푸틴이 정장 상의를 벗으며 차에 오르고, 그 사이에 김정은(40)은 차량의 뒤를 돌아 왼쪽에 탑승한다.
하지만, 북한에 이어 방문한 베트남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노이의 노이바이 공항에서 푸틴을 맞이한 사람은 정부수반이나 국가 원수급이 아닌 레 하이 쭝 베트남 공산당 대외관계위원장(중앙 비서)이었고, 그의 안내 손짓에 푸틴은 바로 아우루스 세나트에 탑승했다.
한달 전인 5월16일 푸틴이 이틀간 베이징에 방문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에서는 국무원(최고 행정기관)의 국무위원 5명이 맞았고, 푸틴은 소수민족인 바이족 출신의 여성 국무위원 선이친(64)의 먼저 타라는 제스처에 곧 탑승했다. 중국과 베트남 방문에선 그 나라의 정상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런 ‘양보’ 풍경이 나올 수 없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도로의 오른쪽을 주행하는 차량에선 일반적으로 뒷좌석 오른쪽이 상석(上席)이다. 타고 내리기 편하게 하기 위한 배려다.
그러나 영국의 일부 매체는 이를 놓고 푸틴과 김정은 두 사람이 일종의 ‘기 싸움’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 BBC 방송은 “푸틴은 시진핑이었다면 감히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이렇게 한밤중에 도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누가 먼저 탑승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하는 어색한 순간으로 판단해 볼 때, 푸틴과 김정은은 누가 더 중요한 파트너인지도 아직 정하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먼저 차에 타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 같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X에선 이 ‘양보 영상’이 화제가 됐다. 한 네티즌은 “정치적으로는 동맹을 맺어도, 푸틴의 KGB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주최 측이 먼저 양보하고 손님이 양보하고 주최측이 또 양보하면 손님이 마지못해 먼저 오르는 ‘교과서 의전’을 따른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소셜미디어 X와 틱톡에선 또 ‘가장 친한 친구를 믿지 못할 때’라는 설명과 함께 두 사람이 칵테일 잔을 부딪히고 나서 잔을 잠시 내려보다가 마시지 않는 영상도 올라왔다. 그러나 이 영상은 2019년 4월 김정은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칵테일을 한 모금씩 마시는 장면을 빼고 왜곡 편집한 것이다. 이번에 두 사람은 상호 조약문을 체결한 뒤 사람들과 포도주 잔을 부딪히고 마셨다.
한편 소셜미디어에선 두 사람이 만나는 여러 장면을 희화화 한 사진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푸틴이 자신이 ‘심복’처럼 여기는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69)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 김정은을 만났을 때 취한 ‘다른’ 모습도 그 중의 하나. 무기를 구하러 온 푸틴은 김정은 옆에 앉아서, 바로 루카셴코가 자신에게 보였던 자세로 김정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김정은으로부터 자신의 사진과 크렘린궁이 들어간 거대한 액자를 선물 받은 푸틴의 묘한 반응도 소셜미디어에서 돈다.
한 네티즌은 “이게 미술품인가. 김정은이 푸틴에게 묘비석을 선물한 것이냐”고 물었고, 또 다른 네티즌은 두 사람의 얼굴에 주목해 “싫으면, 싫다고 말하세요(김정은)” “아, 그게 아니라, 어..(푸틴)” “울지 않을께요(김정은)”라는 설명을 달았다.
푸틴은 해외 방문 시에 소련 시절에 제작된 자국산 여객기를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일류신(Ilyushin) 모델인 Il-96 여객기를 타고 왔다. 1988년 일류신 사가 개발한 이 여객기는 1992년에 러시아의 국영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가 처음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의 두 메이저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와 아에로플로트의 자회사인 로시야 항공 어느 곳도 일류신 사의 여객기를 한 대도 운행하지 않는다.
최근 오래된 항공기를 탔다가 이란 대통령(5월19일)과 말라위의 부통령(6월11일)이 추락 사망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푸틴이 애용하는 러시아산 여객기의 안정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 11일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대통령이 이용하는 국내 제작 여객기들은 안전성에서 매우 믿을 만한 여객기들”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Il-96 외에, 투폴레프(Tu)-214 여객기, Mi-38 헬리콥터를 타며, 이 항공기들의 안전 점검을 위해 모두 2500명에 달하는 ‘특별항공편대’가 크렘린궁 산하에 있다고, 타스 통신은 밝혔다. 푸틴은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ㆍ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방문 때, 2018년 핀란드 방문 때에도 Il-96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