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18일 발트해에서 2개의 해저 광섬유 케이블이 절단되는 사건이 24시간 내에 발생했다. 한국시간으로 17일 오후 5시 먼저 스웨덴과 리투아니아를 잇는 218㎞짜리 해저 광섬유케이블인 BCS 동서 인터링크가 끊어졌다. 이어 18일 오전 11시에는 핀란드 헬싱키와 독일의 로스토크 항을 잇는 1200㎞ 길이의 C-라이언 1 케이블이 끊겼다. C-라이언 1을 운영하는 핀란드의 통신사 시니아는 “외력(外力)에 의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다.
복구에서 수 주가 걸릴 수 있는 이 케이블을 누가 훼손했을까. 독일의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19일 이 2개의 광섬유 케이블 절단은 사보타지(고의적인 파괴)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 케이블들이 우연히 절단됐다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는 ‘하이브리드’(전쟁) 행위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사보타지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개의 케이블이 파손된 시간에 이곳을 지나간 것은 중국 화물선인 ‘이펑 3호’라고 밝혔다. 이펑 3호는 스웨덴 고틀란드섬과 리투아니아를 잇는 BCS 케이블 위를 지나갔고, 계속해서 독일과 핀란드를 잇는 C-라이온1 케이블을 따라서 항해했다. 이펑 3호는 중국의 닝보 이펑해운이 소유한 선박으로, 중국 저장성 닝보에 본부를 둔 이 회사는 단 2척의 화물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군에 “직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 선박의 발트해 활동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발언한 적이 없었다. 이 사건이 나자, 미 국무부 대변인 매튜 밀러는 “미국은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중립국 입장을 포기하고 각각 작년 4월과 올해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정식 멤버로 가입했다.
그래서 이 사건이 터지자, 러시아 배후를 의심했다. 유럽의 NATO 회원국들은 이전부터 러시아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막기 위해 해킹과 기반 시설 방화 등의 하이브리드 전술을 쓴다고 비난했었다. 작년 2월 네덜란드 정보당국은 “러시아의 첩보선이 북해 일대의 가스관과 풍력 발전소 등 인프라 시설을 은밀하게 파악하면서 사보타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화물선은 작년 2023년 10월에도 닻을 내린 상태에서 항해해,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해저 가스관과 케이블을 훼손한 적이 있다. 두 나라는 당시 홍콩에 선적을 둔 이 ‘뉴뉴폴라베어(Newnew Polar Bear)’ 화물선의 운항 경로가 가스관과 케이블 파손 시점 및 장소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 사고가 우발적인 것인지, 고의에 의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펑 3호와 작년의 뉴뉴폴라베어호는 모두 러시아 항구를 출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발트해에서 러시아와 중국 선박의 활동이 잦아졌으며 NATO는 이들 선박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스웨덴 공영 방송 SVT와 핀란드 매체들은 19일 현재 덴마크의 스토레벨트 다리를 지나 발트해에서 북해로 빠져나가는 이펑 3호를 덴마크 해군 전함 2척이 모니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유럽의 발트해는 러시아를 비롯한 9개국이 둘러싸고 있으며 상업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수많은 해저 케이블이 그물처럼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