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제24기계화여단 장병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 차시브야르 인근 러시아 진지를 향해 152mm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2022년 2월24일)한 지 만 1000일이 되는 날이다. 이미 두 나라 병력의 사상자 수는 1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가 자체 개발한 장거리 드론이나 미국과 나토가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후방 탄약고ㆍ공군기지를 파괴하는 ‘쾌거’가 종종 크게 보도되지만, 실제 전황은 러시아에게 훨씬 유리하다.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8%(크림 반도 포함)에 해당하는 11만 649㎢가 러시아군 수중에 있다.

◇기습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주 땅 절반 이미 빼앗겨

미국 워싱턴 DC의 전쟁연구소(ISW)의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에만 2700㎢의 땅을 빼앗았다. 전선이 비교적 고착됐던 작년 한 해 러시아군이 통틀어 465㎢를 빼앗았던 것과 비교하면 작년의 6배에 달한다. 가끔씩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우크라이나군의 선전(善戰)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계속 땅을 빼앗겼다는 얘기다. 가장 전투가 치열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선 러시아군이 하루에 1마일(1.6㎞)꼴로 전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국방 전문가인 마리나 미런은 BBC 방송에 “지금과 같은 속도로 러시아가 전진하면,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은 사실상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9월1일에서 11월3일까지 두 달 새 1000㎢ 이상의 땅이 러시아 손에 넘어갔다.

반면에, 우크라이나가 지난 8월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 주를 기습 공격하면서 점령한 땅은 모두 1171㎢였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가 야금야금 수복에 나서면서, ISW는 지금까지 거의 절반인 593㎢를 되찾았다고 분석했다.

쿠르스크 주에는 현재 북한군 1만 명을 포함해 5만 명의 병력이 탈환을 준비하고 있다. 애초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공격은 러시아군을 전투가 치열한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 유인해내고, 향후 있을 수 있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이 기습 공격이 성공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과 군의 사기가 올라가는 “전술적 성공”도 거뒀다. 그러나 러시아는 곧바로 반격에 나서지도 않았고(이유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러시아군 병력도 전투가 소강 상태에 있는 우크라이나 남동부의 헤르손과 자포리차 지역에서 빼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의 정예 병력이 쿠르스크에 묶이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기습 공격의 성공에도,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어차피 병력 자원이 부족한 우크라이나에게 이 쿠르스크 ‘쾌거’는 “전략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평했었다.

우크라이나는 워싱턴의 장거리 미사일 거리 제한 해제 조치가 있고 다음날인 19일 바로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전술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ㆍ미육군전술용 지대지 미사일)로 쿠르스크 지역을 공격했다. 쿠르스크를 어떻게 해서든 지켜 향후 종전 협상의 유리한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지만, 러시아는 유리한 카드를 더 많이 쥐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망자가 출생자의 3배

물론 러시아군 손실은 매우 크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이 전쟁 개시 이래 지금까지 70만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는 인구 면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인구가 4분의1에 불과한 우크라이나의 군 병력을 고갈시킬 목적으로 인해(人海)전술을 써서, 제대로 전투 훈련도 받지 못한 러시아군을 ‘고기 갈듯이’ 전선에 밀어 넣은 탓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병력과 자원의 대량 손실을 줄이기 위해, 조금씩 후퇴하는 전술을 쓰고 있다.

지난 9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비밀 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도 당시까지 8만 명이 전사했고, 40만 명이 다쳤다. 당시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군 전사자가 20만~40만 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러시아 인구는 1억4400만 명, 우크라이나 인구는 3744만 명이다. 유엔인구기금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장악한 이래, 지난 2년 반 넘은 전쟁을 겪으면서 계속된 난민 발생으로 지금까지 10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본다.

유엔은 우크라이나의 출생률이 계속 떨어지면서 금세기 말 우크라이나 인구가 153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도 내놓았다. 올해 상반기에 8만7655명이 태어난 반면에, 전사자를 포함한 각종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는 25만972명에 달했다. 우크라이나는 공식적인 출생률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미국, 베트남 전쟁 이래 최대 지원했지만 속내는…

미국은 2022년 2월 개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750억 달러(약 243조 원)의 군사 원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방예산(59조4244억 원)의 4배에 달하는 액수이며, 베트남 전쟁 이래 특정 국가에 대한 최대 지원 규모다. 그러나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에 직접적으로 제공된 것은 1060억 달러이고, 나머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미군과 정보 활동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전쟁을 지원하는 ‘속내’는 결국 팽창주의 정책을 펴는 푸틴의 힘을 가급적 최대한으로 빼놓자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나토의 ‘대리전’을 치렀다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 바이든이 막대한 군자금을 대면서도,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는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는 왜 ‘미사일 정책 유턴(U-Turn)에 침묵할까’

트럼프는 집권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24시간 내에”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을 이끌어내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이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과거 “1인치의 땅도 내줄 수 없다”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상태다. 그는 지난 8월 프랑스의 르몽드ㆍAFP 통신 인터뷰에서 “어느 우크라이나 집권자도 영토를 자기 마음대로 양보할 수는 없다. 이는 헌법에 위반된다. (영토 양보는) 국민투표로 결정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5일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행정부가 은밀하게 우크라이나 정부에 러시아의 영토 양보ㆍ평화 협상 가능성에 좀 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암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이 신문에 “결코 우크라이나를 협상 테이블로 밀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년 간 끝없이 지원해야 하나’ 고민하는 서방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리는 “우크라이나 피로증이 우리 파트너들에게도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정권 말기인 바이든 행정부가 전쟁 고조(escalation)를 부를 수 있는 미국 제공 미사일의 거리 제한을 해제한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를 비롯한 트럼프의 안보 측근들은 “3차 대전을 하자는 것이냐”며 흥분했지만, 정작 트럼프는 이 미사일 정책 U-턴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하는 협상의 이점을 잘 아는 트럼프가 바이든의 미사일 정책 유턴으로 푸틴을 압박해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