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인근 도시에 추락한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 동체에 난 구멍들의 모양 때문에, 러시아 방공망에 의한 오인 격추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항공 소속 여객기가 25일 카자흐스탄에서 추락해 탑승자 67명(승무원 5명) 중에서 38명이 숨진 가운데, 이 여객기가 러시아군의 드론 오인(誤認) 요격에 의해 추락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인근 도시에 추락한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 동체에 난 구멍들의 모양 때문에, 러시아 방공망에 의한 오인 격추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항공 J2-8243편 여객기는 이날 오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를 떠나 러시아 남부의 체첸 자치공화국 수도 그로즈니로 가던 중이었으나, 원인 모를 이유로 항로를 바꿔 카스피해를 지나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 시에서 가까운 카스피해 인근 육상에 추락했다. 이 여객기는 브라질의 엠브라에르 사가 제작한 100인승 규모의 쌍발 제트기 E190AR이다.

러시아군의 요격 의혹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여객기 동체 여러 군데에 난 의문의 구멍들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영국의 더 타임스, 데일리 메일 등은 “이 구멍들이 총탄이나 포탄의 파편이 내는 모양을 닮았다”고 보도했다.

25일(현지 시각) 카자흐스탄 악타우시 근처에 추락한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 /인스타그램

비행 모니터 웹사이트인 ‘플라이트 레이더(Flight Radar) 24′에 따르면, 이 여객기는 카스피해를 따라 북상하며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상공을 지나던 중에 추적 모니터 시스템에서 사라졌다. 이 때는 이미 러시아의 방공망에 노출된 뒤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생존자들 “안개로 인해 착륙 포기하고 방향 틀었는데 ‘쾅’ 소리”

러시아 언론은 추락 사고 초기에, 이 여객기가 애초 목적지인 그로즈니 공항에 낀 짙은 안개로 인해 항로를 바꾼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실제로, 생존한 승객들은 여객기가 안개가 낀 그로즈니 공항에서 세번째 착륙을 시도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쾅’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친(親)푸틴 블로거인 유리 포돌야카는 “그로즈니에 대한 공격으로 오인돼, 방어 시스템이 작동했을 수 있다”고 썼다.

이 여객기는 이후 한 시간쯤 지나서 애초 항로에서 한참 이탈한 위치에서 포착됐으며, 카자흐스탄 서쪽의 카스피해 위를 낮게 날다가 추락했다.

추락에 앞서 승무원들은 동체에 강력한 외부 충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하면서, 새 떼와의 충격이나 조종실의 기압 하강 시 산소를 제공하는 산소 탱크의 폭발을 의심했다.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추락. /로이터 연합뉴스

◇”행선지인 체첸 등 러시아의 인근 자치공화국들에 우크라 드론 공격”

그러나 민간 군사전문가들은 기체 곳곳에 난 구멍들이 새 떼나 산소탱크 폭발 이후 발생한 파편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모양이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여러 군사 전문가들은 25일 밤 이 여객기 동체에 난 구멍들은 판치르-S1 러시아 육군의 대공포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여객기가 추락하기 전에,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50대가 러시아의 남부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공격했으며, 이로 인해 방공 시스템이 가동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 여객기는 그로즈니 예상 착륙을 25분 앞두고, 카자흐스탄의 악타우 항공교통 관제당국에 “그곳에 비상 착륙을 해야 한다”고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30분쯤 지나서, 악타우 공항에서 약 3.2 ㎞ 떨어진 벌판에 추락했다. 이 신문은 “수직 날개 부분의 관통 부분들은 미사일 공격이나 방공 시스템에 의한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가 체첸 공화국의 수도 그로즈니에 착륙하려던 무렵에 이곳은 우크라이나군 드론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이 때문에 ‘안개’를 이유로 착륙이 금지됐다”고 보도했다. 또 당시 체첸 보안군도 우크라이나군 드론 떼에 총을 쏴 최소 1대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친(親)러시아 성향의 군사 전문가인 라이바는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목적지와 가까운) 북오셰티아와 인근의 인구셰티아에서 여러 대의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격추됐다”고 말했다. 인구셰티아는 러시아 내 자치공화국으로, 이 여객기가 애초 향하던 체첸공화국과 접하고 있다.

수직 날개 부분에 난 구멍들. /인스타그램

공개된 정보를 분석하는 안보 전문가인 올리버 알렉산더도 더 타임스에 “여객기의 꼬리 수직 안정날개에 발생한, 특정 물체가 들어가고 나온 양쪽 면의 구멍들을 관찰하면 새 떼가 충돌하면서 내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새들이 충돌했으면, 한쪽면에 더 많이 팬 흔적이 나기 마련인데, 이 특정 파편은 충분한 운동에너지를 갖고 있어서 한쪽 면에 충격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관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 전문가는 새 떼와 충돌하면 여객기는 곧 추락 위기에 처하며, 이번 추락 여객기처럼 수백 ㎞를 더 날아가서 추락할 수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항공 자문사인 에어로다니내믹 사의 전문가인 리처드 압불라피아도 독일 매체 빌트에 “이 구멍들은 추락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외부로부터 받은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항공보안 기업인 오스프리 플라이트 솔루션 사는 이날 “해당 여객기가 러시아 군 방어시스템에 격추된 것으로 보인다”는 경보를 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은 추락 초기에는 기상 악화로 인해 항로를 변경했을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어 “추락 원인을 추정하기는 매우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