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인도네시아에서 인부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한 시신들을 파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백신 접종률이 8%에 불과한 상태에서 델타 변이에 강타 당하며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도 비슷한 사정으로 고강도 경제봉쇄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백신 접종률이 낮은 아시아 국가들이 방역과 봉쇄에만 의존하다 경제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현지 시각) “세계의 생산기지였던 아시아 신흥국들이 (코로나 시대) 세계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타격이 심한 건 동남아 7국으로, 고강도 경제 봉쇄 탓에 최근 제조업 생산이 지난해 5월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6월 의류 등 비필수 업종의 공장 문을 닫게 했고, 인도네시아도 수출용 의류 공장은 가동하려고 하지만 베트남 등 주변국의 봉쇄 조치 때문에 원재료 확보에 차질을 빚고 있다. 태국에선 도요타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았다.

WSJ는 올 상반기 미국발 경제 회복세 덕을 봤던 중국과 한국 등 수출 주도형 경제도 외국의 수요 둔화로 수출 엔진이 느려지는 조짐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26개 도시에 델타 변이가 퍼진 중국은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WSJ는 “한국은 통신·가전 수출 수요에 힘입어 지난 6월 수출이 39.8%, 7월 29.6% 증가했지만 향후 몇 달간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중국과) 비슷한 역풍에 맞닥뜨릴 수 있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팬데믹 첫해인 지난해에는 모범적인 방역으로 미국·유럽 등에 비해 충격을 줄였다. 그러나 올해 백신 보급률이 선진국과 신흥국의 운명을 바꾸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유럽·미국은 현재 백신 접종률이 40%인 반면, 신흥국은 그 절반인 20%에도 못 미친다. 아시아는 델타 변이 차단을 위해 모임 금지 등 고강도 봉쇄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 임시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에서도 델타 변이 감염 사례가 처음 나왔다.

HSBC 아시아경제연구소의 프레더릭 노이만 공동소장은 “델타 변이의 즉각적 위협은 향후 몇 달 새 가라앉겠지만, 봉쇄 등의 영향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각국 통화정책도 꼬일 수 있다. 아시아 각국에선 인플레이션 공포가 크지만 불황이 장기화되면 현재의 저금리 기조를 빨리 정상화하기 힘들다. 반면 백신 보급에 힘입어 경제 회복 목표치를 달성한 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 먼저 돈줄을 죌 경우 아시아 금융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