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선의로 아프리카에 기부한 옷들, 막상 현지에서는 대량 폐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도쿄에서 이 같은 문구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사람들이 선의(善意)로 아프리카에 기부한 옷들이, 막상 현지에서는 파손이나 곰팡이, 혹은 현지 기후나 생활양식과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최 측은 “일본과 미국, 유럽 등 국가에서 아프리카로 향하는 헌 옷은 연간 20억벌에 달한다”며, 이러한 ‘과잉 기부’가 낳는 환경오염 등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가나의 한 의류 폐기물 처리업장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호주 ABC 유튜브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의 한 스튜디오에 마련된 전시회에는 실제 가나에서 기부된 옷들이 현지 매립장으로 옮겨져 소각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 등이 전시돼 있다. 이를 기획한 일본의 아프리카 사업 개발 회사 ‘스카이어’의 대표 하라 유카리는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우리가 헌 옷을 기부할 때, 과연 그 옷을 자신이 받는다고 해도 기쁠 수 있을지. 또 우리의 기부는 어떠한 루트로 누구 손에 넘어가게 되는 것인지를 한 번쯤 멈춰 서 생각해볼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나의 수도 아크라엔 매주 1500만여 벌의 중고 의류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나의 인구는 3000만명가량으로, 인구 절반에 가까운 의류가 매주 들어오는 셈이다. 중고 의류 중 약 40%가 매립지로 향해 소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나의 한 의류 폐기물 처리업장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그 위로 사람과 염소 등이 지나다니는 모습./영국 ITV뉴스 유튜브

하라 유카리는 가나의 예술가 셀 코피가의 작품을 접한 뒤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됐다. 셀 코피가는 자국 슬럼가에 방치된 폐기 의류들을 모아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이번 도쿄 전시회에도 그의 작품이 걸렸다.

전시회 준비엔 패션을 배우는 20대 대학생들도 함께했다. 학생 측 대표, 도쿄외국어대 재학생 엘리사 차일즈는 “평소 찢어졌거나 색바랜 옷들이라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기부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선 폐기돼 또 다른 환경 문제를 낳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며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옷을 살 때부터 본인에게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는 등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케냐의 한 마을에 버려진 헌 옷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유럽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 유튜브

주최 측은 또 무분별한 과잉 기부가 대량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뿐 아닌, 현지의 전통 생산 기법과 새로운 패션 브랜드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도통신은 지난해 핀란드 알토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을 인용해,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은 2000년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와중 연간 9200만t의 의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30일까지 진행되고, 다음 달 미나토구의 한 카페에서도 똑같이 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향하기 위해 포장돼 있는 헌 옷들/미국 NBCLX 유튜브

그간 미국 인터넷 언론 복스(Vox), 호주 ABC 등 외신들도 과잉 기부로 인해 아프리카에 막대한 양의 의류 폐기물이 쌓이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지적해 왔다. 가나의 한 폐기물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생산되는 의류 폐기물들의 투기장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르완다의 한 저널리스트는 “누군가 버린 옷들을 자랑스럽게 입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앞서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 등이 속한 동아프리카공동체(EAC)는 2016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해외로부터 중고 의류 수입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합의했으나, 미국 등 수출국들의 무역 수익 및 일자리 감소 우려로 인한 반발과 부딪히기도 했다.

케냐의 한 시장에 헌 옷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유럽환경국(European Environmental Bureau) 유튜브
일본에서 “당신이 선의로 아프리카에 기부한 옷들, 막상 현지에서는 대량 폐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회. 실제 버려진 의류들로 만든 예술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일본 에티컬컨비니(Ethical Conveni)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