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 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자국 병력 진입을 명령한 직후 소속 부대의 표시를 하지 않은 탱크 한 대가 22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시내에서 포착됐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도네츠크시 외곽에서 이 같은 모습을 한 탱크 5대가, 시내 다른 지역에서 탱크 2대가 목격됐다고 보도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親)러시아 반군 장악 지역인 돈바스 지역에 자국 군대를 ‘평화 유지군’ 명목으로 전격 투입했다. 반군 세력이 이곳에 세운 자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LPR)’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을 21일 독립국가로 인정키로 하고, 이를 공식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한 지 하루 만이다.

유럽연합(EU)의 외교 수장인 호세프 보렐 EU 외교 안보 정책 고위 대표는 이날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진입한 것을 확인했다”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를 LPR과 DPR의 영토로 인정함으로써 돈바스 내의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침략 세력’으로 규정했다. 또 이를 구실로 22일 LPR·DPR과 상호 우호·협력 조약을 체결, 돈바스에 군사기지를 운영할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한 뒤 러시아군을 평화 유지군으로 두 지역에 보내겠다고 발표한 뒤 22일 도네츠크 시내로 진입하는 러시아군 차량이 목격됐다./로이터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21일 국영 TV로 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부패 국가”라며 “(러시아의 옛 영토인) 돈바스 지역 동포들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긴급 국가 안보 회의를 열어 무력 대응 여부를 논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결정을 국제법 위반이자 우크라이나의 주권 파괴 행위로 규정하고, 제재에 착수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DPR과 LPR을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서방은 이 국가들을 러시아의 조종을 받는 괴뢰국으로 보고 있다. 백악관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추가적 제재 조치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러시아의 결정을 강력 규탄하며, 제재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 경제 제재를 즉시 실시한다”며 러시아 은행 5곳과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재벌 3명의 자산 동결 및 여행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독일도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관 사업의 중단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 소집돼 이 문제를 다뤘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주(駐)유엔 미국 대사는 “러시아의 ‘평화 유지군’ 주장은 허튼소리이며, 전쟁 구실을 만들려는 시도”라며 “푸틴 대통령은 제국주의 시대로 세상을 되돌리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우리는 외교적 해법에 대해 열린 입장이지만,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를 공격해 ‘피바다’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러시아의 ‘평화 유지군 파병’ 주장을 정당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