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쪽 소도시 부차에서 4일(현지시간) 주민들이 러시아군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집단 매장지를 살펴보고 있다. 러시아군이 한 달 넘게 점령했다가 철수한 이 지역에서는 학살된 의혹이 짙은 민간인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지난 2000년 2월 러시아가 체첸 공화국에서 벌인 ‘자치스트카(Zachistka)’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러시아군의 잔혹 행위가 유럽인들에게 22년 전 발생했던 ‘노브예 알디’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치스트카’는 ‘청소’를 뜻하는 러시아 말이다. 지난 1994년 체첸 침공을 시작한 러시아는 2000년 2월 수도 그로즈니를 최종 점령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군은 노브예 알디에서 82명의 체첸 민간인을 즉결 처형했다. 이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인해 ‘자치스트카’란 용어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러시아군은 (노브예 알디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집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것도 모자라 시신에서 금니와 보석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술에 취한 군인들은 사람들이 숨어 있는 지하에 수류탄을 던졌고, 무고한 여성을 강간했다”며 “희생자 대부분은 노인이었고, 한 살짜리 아기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로즈니 근교인 스타로프로미슬로프스키 지역에서도 노인과 여성 등 41명의 민간인이 러시아군에 의해 살해됐다.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러시아군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체첸 민간인을 잔혹하게 처형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은 그런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를 다시 유럽에 되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곳곳에선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민간인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장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지난 3일 “키이우 주변 30여 소도시와 마을에서 410구 이상의 민간인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군이 부차 등에서 저지른 일은 절대로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이것이 러시아의 전쟁 방식”이라며 “푸틴의 군대가 그동안 체첸과 시리아에서 벌였던 전쟁 범죄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동유럽 전문 매체인 BNE 인텔리뉴스는 “많은 전문가가 이번 부차 학살을 보며 러시아군이 체첸을 상대로 벌인 ‘자치스트카’를 언급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포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민간인 생존자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