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에서 소방관이 불길에 휩싸인 변전소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최소 20차례 이상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감행, 도시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사상자도 수십명 나왔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이달 9일 2차 대전 승전기념일을 앞두고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이달 9일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동부 돈바스 지역은 물론 서부와 중부 주요 도시에 무차별 공습을 재개했고,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도시인 남부 오데사에 대한 공격의 고삐도 바짝 조였다. 수도 키이우 공략 실패에 이어 돈바스 완전 점령 계획도 뜻대로 풀리지 않자, 오데사~크림반도~마리우폴~돈바스로 이어지는 초승달 모양의 ‘남부 회랑’이라도 손에 넣으려 조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은 3일(현지 시각)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20차례 이상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다”며 “서부 르비우를 비롯한 10여 개 도시의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사상자도 수십 명 나왔다”고 밝혔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서부 중심 도시 르비우에선 변전소 3곳이 공격을 받아 시내의 전기와 수도 공급이 대부분 중단됐다. 르비우는 서방의 주요 지원 물자가 지나는 곳으로, 이곳에 대한 공습은 약 2주 만이다. 안드리 사도비 르비우 시장은 “미사일 공격으로 2명의 사상자가 확인됐다”며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중부에선 서남부 국경 지대와 키이우 및 동부 돈바스를 잇는 철도가 타깃이 됐다. 우크라이나 철도공사는 “크로피우니츠키주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등의 철도 시설 6곳이 미사일 공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최소 14편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CNN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국경을 통해 들어오는 서방 무기가 키이우와 동부 전선으로 보급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장악한 ‘남부 벨트’

흑해 최대 항만이 있는 오데사도 집중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고정밀 ‘오닉스’ 미사일로 오데사 지역 군 물류센터를 타격했다”며 “바이락타르 TB2 무인기를 비롯, 서방이 공급한 미사일과 탄약을 대거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학교 기숙사에 미사일이 떨어져 14세 남학생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데사 동쪽 수십㎞ 지점까지 진출한 러시아군은 지난달 24일부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오데사와 맞붙은 몰도바의 친러 분리주의 지역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우크라이나군의 테러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러시아가 트란스니스트리아와 함께 오데사를 동서 양면에서 공격할 수 있다”며 “마리우폴과 헤르손에 이어 오데사까지 점령당하면 우크라이나는 남부 해안선이 모두 사라져 ‘내륙 국가’가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가 오데사 동쪽과 접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몰도바까지 침공, 합병할 것이란 전망도 계속 나온다. 키이우 국제사회학연구소(KIIS) 등은 “이렇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해양 진출로가 영영 차단돼 주력 산업(철강과 곡물 등)의 수출이 크게 제약받게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경제 재건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등 돈바스 지역의 전투도 격렬해졌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지난 24시간 동안 돈바스 지역에서 12차례 이상의 러시아군 공격이 있었다”고 밝혔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폭격당한 주거 지역은 폐허가 됐고, 주민 10만여 명이 전력과 수도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네츠크 주 당국은 “폭격으로 공장 근로자 등 민간인 2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민간인 대피를 위해 잠시 중단했던 아조우스탈 제철소 공격을 재개했다. 제철소에서 농성 중인 아조우 연대는 “러시아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맹공을 가하고 있다”며 “해안 쪽에서 보트를 이용, 대규모 병력도 상륙시키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피란민 127명이 2개월간 고립됐던 아조우스탈에서 탈출해 자포리자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이날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주민 4만명을 러시아와 친러 반군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며 “이 중 일부는 극동 시베리아 오지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군수 업체 록히드마틴의 앨라배마 공장을 찾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생산 과정을 둘러보고,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위한 330억달러(약 42조원)의 예산안의 조속 처리를 의회에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서방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대러 경제 제재 참여 국가에 대해 러시아산 제품과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