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전통적 앙숙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12일(현지 시각) 무력 충돌해 100명 가까이 숨졌다. 2년 전 전쟁으로 6600여 명이 숨진 뒤 최대 규모 충돌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당시 전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무력 충돌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의 친척들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의 한 군병원 밖에 모여 있다. / AFP 연합뉴스

13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각각 입장 발표를 통해 이날 새벽 양국이 국경에서 무력 충돌했고, 아르메니아에서는 군인 최소 49명,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최소 5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양국은 충돌 원인으로 서로를 탓했다.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국경 인근 마을 6곳에 아제르바이잔이 포격했고 이 도발에 대응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아르메니아가 지난 수개월간 대규모 전쟁 도발을 준비했다”며 “아르메니아군의 도발에 우리 군이 충분히 되갚아줬다. 합법적인 군사 타격 시설을 향해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즉각 중재에 들어가 이날 오후 양국이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 발표 이후에도 아르메니아는 “공격 강도는 줄었지만 아제르바이잔이 국경에서 계속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아르메니아가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두 나라는 모두 옛 소련 소속이었다. 1991년 양국이 소련 연방에서 분리 독립하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인구가 대다수인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95%가 무슬림이다. 두 나라는 특히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놓고 수십 년간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지역은 아르메니아인이 다수 거주 중이지만, 영토상으로는 아제르바이잔 땅이다. 1920년대 소련이 일방적으로 이 지역이 아제르바이잔 땅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두 나라는 1992~1994 전면전을 벌여 양국에서 3만명이 숨졌고, 2020년 벌어진 6주간 전쟁으로 6600명이 숨졌다.

싱크탱크 아틀라스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금, 구리 광산이 다수 분포했고 2010년 이 지역 금 채굴량이 120t에 달한다. 여기에 아제르바이잔이 카스피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가스관도 지난다. 같은 무슬림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 인접 국가 튀르키예와 역시 무슬림이지만 아제르바이잔 세력이 커지는 걸 막고자 비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는 이란 등 인접 국가들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에 군사 기지를 두고 있어 가깝지만 아제르바이잔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다.

이번 무력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까 주변국은 빠르게 반응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아르메니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평화 합의를 이행하라”고 했고, 러시아 크렘린궁은 “푸틴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중재에 나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했다.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는 도발을 멈추라”고 했다.

이번 충돌은 2020년 전면전 이후 최악으로 꼽힌다. 당시 러시아 중재로 마무리되면서 러시아는 이곳에 평화 주둔군 2000명을 배치했고 여전히 유지 중이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관심을 돌리려 물을 휘젓는 건 우리가 언제나 걱정하는 바”라며 “러시아는 (충돌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