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 동안 살면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터미널'에 영감을 준 이란 출신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가 12일 공항에서 사망했다. 사진은 나세리가 2004년 8월 11일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터미널 1에서 소지품 사이에 앉아 있는 모습./AP 연합뉴스

공항 터미널에서 18년 동안 머물러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터미널’에 영감을 준 이란 출신 남성이 77세 일기로 공항에서 숨졌다.

12일(현지시각)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메헤란 카리미 나세리는 이날 낮 파리 샤를드골 공항 2층 터미널에서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고 공항 관계자가 밝혔다.

나세리는 1988년부터 공항에서 생활했다. 그는 플라스틱 벤치에서 잠을 자고 일기를 쓰고, 지나가던 여행객들을 살펴보며 지냈다. 공항 직원들과 친해진 뒤로 직원 시설에서 샤워를 하기도 했다.

직원들 사이에서 그는 ‘알프레드 경’으로 불렸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가 됐다.

나세리는 1945년 이란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영국 유학을 떠났던 그는 이란으로 돌아온 뒤 왕정 반대 운동을 하다가 여권 없이 추방됐다.

나세리는 유럽 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1986년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파리 기차역에서 난민 관련 서류가 든 가방을 분실했다.

이후 영국 런던으로 입국하려던 나세리는 난민 서류가 없어 입국이 불허돼 파리로 돌려보내졌다. 프랑스 경찰도 나세리를 추방하려 했으나 국적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 문서가 없어 그를 파리 샤를드골 공항 터미널에 방치했다.

이란은 당초 나세리를 추방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나세리는 2006년까지 18년간 공항에서 살게 됐다. 1999년 프랑스로부터 난민 지위를 받았지만, 이후에도 공항에 머물기를 선택했다.

공항에서 그와 친구가 된 이들은 오랜 터미널 생활이 그에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1990년대 공항 소속 의사는 그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이곳에서 화석화됐다”고 표현했다. 한 직원은 그를 ‘외부생활이 불가능해진 죄수’에 비유하기도 했다.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터미널 스틸컷

나세리의 이야기는 할리우드의 스필버그 감독에게 영감을 줘 영화로 제작됐다. 200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톰 행크스는 모국인 가상의 동유럽 국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 되면서 미국에 입국하지 못해 뉴욕 존 F 케네디(JFK) 공항에 머무는 것으로 나온다.

나세리는 제작사 드림웍스로 부터 영화화 판권 수십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관계자에 따르면 나세리는 그 돈을 갖고 2006년 공항을 나와 보호시설, 호텔 등을 전전했으나 사망하기 몇 주 전 다시 샤를 드골 공항으로 돌아가 지냈다.

숨진 나세리에게선 수천유로(수백만원)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