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 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북부 도시 토리노에서 한 시민이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를 희화화한 인형 탈을 쓰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우파 정부가 ‘기본 소득’ 정책에 대한 대대적 개편에 나섰다. 빈곤 타파라는 목적으로 도입해 코로나 시기를 거쳤지만, 저소득층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려 “빈곤을 고착화한다”는 지적에 되돌리는 것이다. 기본 소득에 들어가는 막대한 정부 예산 때문에 교육과 의료 등에 쓸 돈이 줄어든다는 문제점도 노출됐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노동자의 날’인 1일(현지 시각) 국무회의를 열어 2019년부터 시행 중인 ‘시민 소득’ 제도를 ‘포괄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하고, 계약 기간 1~2년에 해당하는 단기 일자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노동 개혁 시행령’을 의결해 발표했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청년의 근로 의욕을 북돋고,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라며 “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정책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개혁을 통해 절약된 예산은 소득세 감면을 통해 국민에게 되돌려 준다”며 “열심히 일하는 이탈리아인이 보상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소득은 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M5S)의 주도로 지난 2019년 도입한 기본 소득 정책이다. 무직자나 저소득자에게 생계가 가능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걸 막겠다는 취지였다. 월 수입이 780유로(약 115만원)가 안 되거나 일자리 없이 임대 주택에 거주하는 18~59세 성인에게 1인당 40∼780유로(약 6만∼115만원)를,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월 최대 1300유로(약 191만원)를 지원해 왔다. 현재 가구당 평균 월평균 수급액은 550유로(약 81만원)이다.

이 제도는 그러나 국내총생산 대비 10%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만성적 재정 적자를 더욱 심화하며 “지속 불가능한 제도”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민 소득에 들어가는 정부 지출은 연간 70억유로(약 10조3000억원)에 달했다. 시민 소득이 정부 재정의 ‘블랙홀’이 되면서 교육과 의료 등 다른 복지 예산이 2019년 이후 제대로 확충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는 “저소득층이 무위도식을 통해 빈곤에 계속 머물도록 만드는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결국 지난해 10월 우파 연정을 통해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즉각 시민 소득 제도 개편에 나섰다. 시민 소득을 대신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포괄 수당은 가구당 월평균 지급액이 월 350유로(약 51만원) 수준으로 약 3분의 1가량 삭감된다. 또 최대 1년(12개월)간만 받을 수 있게 되고, 이 기간에 직업 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등 취업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증명토록 했다. 사실상 실업 수당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대신 젊은 무직자의 취업 문을 넓히기 위해 기업이 12~24개월 사이의 단기 계약직 채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정규직 채용을 늘리기 위해 기업 규모에 따라 단기 계약직 근로자의 비율을 엄격하게 제한했으나, 이를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이탈리아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 시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고, 연금 및 사회보험료 지불 부담이 크다는 점 때문에 고용 확대에 매우 소극적이었다”며 이탈리아 정부의 이번 조치가 22%에 달하는 이탈리아 청년 실업률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