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매장 신용카드 단말기에 나타난 팁 선택지./AFP연합뉴스

미국의 한 소비자가 집 근처 가게를 방문해 과자를 하나 구매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는 가게에 들어가 원하는 과자를 고르고 가게에 설치된 키오스크(무인 주문 단말기)를 이용해 셀프로 계산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직원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소비자는 팁을 지불해야 할까?

최근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불만을 토로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9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직원과의 대면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 매장에서도 팁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팁은 대표적인 서구 문화 중 하나다. 식당·미용실·택시 등을 이용한 고객이 자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노동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지불하는 일종의 봉사료다. 식당의 경우 일반적으로 결제금의 15~20% 정도를 팁으로 지불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여겨진다.

WSJ은 “전국의 공항, 경기장, 카페 등에 설치된 셀프계산대에서 ‘팁 20%를 남겨달라’는 메시지가 떠 소비자들을 괴롭히고 있다”며 “사업주들은 이를 통해 직원 급여를 인상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팁이 정확히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팁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직원들이 화면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노 팁’(No tip)을 누르기가 곤란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워싱턴 DC의 아메리칸 대학에 재학 중인 이시타 자마르는 “셀프계산대를 놔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으면서 팁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이 팁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최근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을 이용했다는 가렛 베밀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항 내 상점에 들어가 물 한 병을 구매했다고 한다. 베밀러는 “셀프 계산대를 이용했는데 6달러짜리(약 8000원) 물 한병에 10~20% 팁을 추가할 수 있다는 옵션이 화면에 떴다. 황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소비자에 대한 감정적 협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워렌 윌리엄슨도 휴스턴의 부시 인터콘티넨탈 공항 내 기념품 상점 프랜차이즈인 OTG를 방문했다가 이 같은 일을 겪었다. 그는 팁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생인 에밀리 클루리와 그레이시 셰퍼드는 한 제과점에서 각각 5달러짜리 쿠키를 구매했다. 이들은 셀프계산대 아래 ‘우리가 당신을 웃게 했다면 팁을 남기는 것을 고려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은 것을 보고 팁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이날 제과점 직원이 두 사람에게 건넨 말은 “옆으로 서서 기다리다가 주문하세요”라는 한 마디 뿐이었다.

셰퍼드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며 “팁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만약 팁을 주지 않았으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고객에게 팁을 내겠느냐는 선택지도 주지 않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WSJ는 “팁 문화를 둘러싸고 ‘고용주가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직원 급여에 대한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넬대학교 놀런 호텔경영대학원의 윌리엄 마이클 린 교수는 “기업이 인건비 절감과 팁 요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아주 적은 비용을 들여, 추가로 돈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