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2018년 미국의 한 영화제에 참석한 주연배우 올리비아 핫세와 레너드 위팅. /파라마운트 픽처스, AP연합뉴스

1968년 제작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배우들이 촬영 당시 성착취 등 피해를 입었다며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제기한 6600억 규모의 소송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25일(현지시각) AP통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고등법원의 앨리슨 매켄지 판사는 이 영화에서 줄리엣을 연기한 올리비아 핫세(72)와 로미오 역의 레너드 위팅(72)이 파라마운트 픽쳐스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매켄지 판사는 핫세와 위팅이 ‘성적학대’라고 주장한 장면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보호받는다고 판단했다. 매켄지 판사는 결정문에서 “해당 장면이 명백히 불법이라고 판단할 만큼 선정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아동 성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송이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한시적으로 유예한 캘리포니아주의 개정 법 적용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판례를 인용해 “아동 음란물은 특히나 혐오스럽지만, 아동의 나체가 드러났다고 해서 모두 음란물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배우 측 변호인은 이번 법원의 기각 결정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조만간 추가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호인 솔로몬 그레센은 성명을 통해 “영화산업에서 취약한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영화산업 내 미성년자에 대한 착취와 성차별에 맞서야 하며, 또 이를 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핫세와 위팅은 지난해 말 영화 촬영 당시 성적 학대, 성희롱, 사기 등의 피해를 입었다며 소장을 제출했다. 출연 당시 핫세와 위팅은 각각 15세, 16세의 어린 나이였다.

이들은 프랑코 제피렐리(2019년 사망) 감독이 영화 후반부 베드신 촬영을 앞두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감독이 당초 자신들에게 피부색깔과 맞춘 속옷을 입은 채 촬영할 것이라고 했으나, 촬영 직전에 말을 바꿔 “속옷을 입지 않고 간단한 바디 메이크업을 한 채 촬영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카메라를 나체가 보이지 않는 위치에 배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신체 일부가 노출되는 상태로 촬영이 진행됐다. 영화 속에는 두 사람이 맨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 삽입됐다. 두 사람은 감독이 “나체로 찍지 않으면 영화가 실패할 것이고, 그러면 경력도 망치게 될 것”이라며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영화 촬영 이후 오랜시간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면서 5억 달러(약 6629억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제피렐리 감독의 아들 피포는 지난 1월 성명을 통해 “해당 장면은 포르노와는 거리가 멀다”고 반박했다. 그는 “아버지는 생전 포르노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 왔다”며 “55년이 지난 현재, 이 영화로 이름을 널리 알린 두 명의 나이든 배우가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이 매우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어 “촬영 후에도 그들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자신들의 경험에 대해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여러 차례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