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무인 단말기로 마이넘버카드 발급을 신청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디지털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마이넘버카드’가 잇따른 행정 오류로 난항을 겪고 있다. 12자리 숫자로 된 마이넘버카드는 한국의 주민등록증처럼 개인을 식별하는 통합 신분증이다.

고노 다로 일본 디지털 담당상은 지난 7일 “마이넘버카드에 본인이 아닌 가족 명의 계좌가 등록된 사례가 발견됐고, 건수는 약 13만건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생판 모르는 남의 계좌가 등록된 경우도 748건 있었다.

사회보장 관련 지원금 등을 송금받는 마이넘버카드 연동 계좌가 다른 명의로 등록되는 오류가 13만건이나 발견되자, 모든 국민 발급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앞서 일본 정부는 공문서에 일일이 도장을 찍고 이메일보다 팩스를 선호하는 ‘디지털 후진국’에서 벗어나겠다며 마이넘버카드를 선결 과제로 앞세웠다. 한국처럼 주민번호 하나로 의료보험 등 각종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체계를 갖추기 위해선 마이넘버카드와 같은 국민 식별 번호 카드가 필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당초 목표는 지난 3월까지 거의 모든 국민에게 마이넘버카드를 발급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부처로 ‘디지털청’을 출범시켰고, 마이넘버카드를 발급받으면 편의점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2만엔(약 19만원) 포인트도 제공하는데 지난 4월 기준 발급률은 69.8%에 머물러 있다.

현재 마이넘버카드는 의무 발급은 아니고 원하는 사람만 신청해 받고 있다. 일본 정부의 당초 목표가 물 건너간 배경으로는 개인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 분위기가 꼽힌다. 마이넘버카드를 발급하면 전산화된 개인정보가 유출된다고 일본인들이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13만건의 계좌 연결 오류는 마이넘버카드와 은행 계좌의 이름 대조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일본 은행 계좌 명의는 ‘가타카나’로 등록돼 음독(音讀)이 가능한데, 마이넘버카드는 이름을 한자로 입력하도록 돼있다. 한자로 기재된 이름은 읽는 방법이 제각각이어서 본인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워 은행 계좌 명의와 같은지 자동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고노 디지털상은 “매우 죄송하다”며 “신속히 자기 계좌로 변경하길 요청드린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마이넘버카드에 관한 실수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디지털 사회로의 변신을 꾀하다 망신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5월 요코하마 등 각지에서 마이넘버카드를 통한 주민표(주민등록초본 격) 교부가 오발급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지난해 3월에는 디지털청이 지자체 등 각종 공공기관 웹사이트 계정을 통합하겠다며 공개한 ‘G비즈ID’의 이용자 262명분의 직장 주소와 번호,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원인은 시스템 결함으로 드러났다. 2020년 6월에는 코로나 확진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가 격리 기간 등 정보를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며 내놓은 애플리케이션 ‘COCOA(코코아)’가 기능 결함과 낮은 보급률 등 논란에 휩싸이다 석 달 만에 철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