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대전 동구 용수골어린이공원 물놀이장에서 아이들이 물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기상청은 한반도가 본격적인 북태평양 고기압 영향권에 들며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기상기구는 27일 “올해 7월 1일부터 23일까지 3주간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은 16.95도로 1979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라고 발표했다. /신현종 기자

세계 주요 도시들에 동시다발적 폭염(暴炎)이 닥친 가운데 올해 7월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달이 될 전망이라고 유럽 과학자들이 밝혔다. 기후변화가 극한 환경을 초래해 대처가 시급하다는 경고 또한 잇달아 나오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7일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화(熱化·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7일 “올해 7월 1일부터 23일까지 3주간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이 16.95도에 달했다. 이는 전 세계 평균 지표면 기온 측정을 시작한 1979년 이래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고”라고 발표했다. 기존 최고치는 2019년 7월 16.63도였다. WMO는 “지금 추세라면 올해 7월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달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WMO의 분석은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가 관측한 데이터에 기반했다. 발표가 나온 후 구테흐스 총장은 “북미·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잔인한 여름이며 지구 전체의 재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800년대 추정 온도 대비) 1.5도로 제한한다는 유엔의 목표를 달성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여지는 남아있다”며 유엔 회원국의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실제로 올 들어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기온은 이달 들어 40도를 넘어섰고, 미국에서도 최근 연일 4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발생한 도시가 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7일 이상 고온에 대한 백악관 대책 회의 후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오늘 기후변화라는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을 논하려 모였다”며 폭염에 대처하기 위한 연방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붉게 달아오른 한반도 - 28일 오후 4시 기상 정보 분석 사이트 ‘어스 널스쿨’이 기온 고통 지수(Misery Index)를 표시한 지도에서 한반도 대부분 지역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 지수는 기온과 체감 온도를 분석해 얼마나 뜨거운 열기를 체감하는지 보여준다.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견디기 힘든 더위라는 뜻이다. /어스 널스쿨

한국도 때 이른 ‘7월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장마 기간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비구름이 걷히기만 하면 전국이 펄펄 끓었다. 제주도와 경북 경산시에선 한낮 최고기온이 각각 37.3도, 36.6도까지 치솟으며 올해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에선 강남구가 최고 36.5도, 광진구·영등포구가 36.4도를 기록했다. 예년 8월의 본격적 무더위가 7월에 나타난 것이다. 8월엔 역대 최고 수준의 폭염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위기를 부인해 온 사람들조차 극심한 더위가 미국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며 “미국에서만 폭염 사망자가 매년 600명 이상 발생하고 있고 이는 기후로 인한 사망 원인 중 1위”라고 말했다. 다음 대선 출마를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표적 기후변화 회의론자다. 바이든은 이에 맞서 기후변화 대처를 중점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애리조나·텍사스주(州) 등 남서부 지역을 지난 한 달 동안 달군 ‘열돔(heat dome)’ 현상이 최근 북동부로 이동하면서 사실상 미국 전역이 폭염의 영향권에 들어간 상태다. 열돔이란 뜨거운 공기가 층층이 쌓여 뭉치는 현상을 뜻한다. 미 기상청 특보에 따르면, 서부 캘리포니아주부터 동부 매사추세츠주까지 미 전역 27주 1억2000만명이 폭염 경보와 주의보 영향권에 포함됐다. 미국 인구의 약 3분의 1이 ‘위험한 더위’ 안으로 진입했다는 뜻이다.

바이든은 텍사스에서 유급 휴식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목하며 극한 더위에서 근로자를 보호할 대책 수립에 서둘러 달라고 했다. 그는 “건설과 농업 등 야외 작업이 많은 사업장을 선정해 안전 규칙을 만들 것”이라며 “말 그대로 불타는 더위 속에서 종일 일하며 목숨을 위협받고, 어떤 곳에서는 물 마실 시간조차 없다니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날씨 예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자금 지원, 서부 전역에 깨끗한 식수를 보장하기 위한 보조금 지원 등의 대책도 발표했다.

그래픽=송윤혜

유럽과 중동 국가들도 기온이 올라가며 폭염 피해가 발생 중이다. 이달 들어 이탈리아 로마 기온이 42도, 스페인 마드리드는 43도까지 올라갔고 이집트 아스완 기온은 25일 45도까지 치솟았다. 전국에서 3주째 산불이 확산 중인 그리스에선 27일 산불로 군 탄약고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부 볼로스에서 시작된 산불이 마른 강풍을 타고 해안으로 확산, 약 20㎞ 떨어진 네아안치올로스의 탄약고를 덮쳤다. 그리스 공영 ERT 방송은 “수십㎞ 밖에서도 폭음이 들릴 만큼 강력한 폭발이 발생했다”며 “다행히 주변 마을 주민들은 미리 대피해 인명 피해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리스에선 올여름 유례없는 수준의 폭염과 산불로 관광객 수만 명이 휴가 일정을 중단한 채 떠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는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관광업이 차지한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의 원인은 기후변화이며, 기후 위기는 이제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기후변화 대응을 미룰 수 없다”며 “경제와 사회 여러 측면에 미치는 ‘극단적 영향’에 대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셰전화(解振華) 중국 기후변화 사무특사와 화상회의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만남은 케리의 지난 16~19일 중국 방문 후 열흘 만이다. 케리는 앞서 “기후 위기 문제에서 양국이 우선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으나 중국은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 해제 같은 외교 문제의 해결이 중요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27일 회담 후 중국 생태환경부는 “중·미 간 기후변화 대화·교류 강화와 글로벌 기후 다자 프로세스 추진 협력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양측은 긴밀한 소통을 계속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 배출 세계 1·2위국이다. 양국은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에서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7일 “중국의 석탄 수요가 지난해보다 3.5% 늘면서 전 세계 석탄 사용량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탄은 화석연료 중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다. IEA는 “미국·EU·일본·한국의 석탄 수요가 줄었지만, 중국·인도 등의 사용량 증가를 상쇄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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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상기구(WMO)가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다. C3S는 유럽을 포함해 전 세계 183국 기상청이 공개한 일일 날씨 데이터를 수집해 초대형 기후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자료는 44년 전인 197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 면적(5억1010만㎢) 중 약 29%인 육지의 온도는 실제 측정 값으로, 해상의 온도는 선박에서 측정한 값과 기온 예측 모델을 통해 추정한 값을 혼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