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한복판도 드론 공격받아 - 30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시 당국이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파손됐다고 밝힌 ‘모스크바 시티’ 건물의 출입을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고층건물이 밀집한 이 지역은 모스크바시가 금융·상업·엔터테인먼트 복합 지구로 개발해 온 곳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새벽 모스크바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3대를 격추했으며, 이 중 2대가 추락하면서 사무실 건물에 부딪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를 드론으로 공격했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로이터 뉴스1

러시아 점령지를 되찾으려는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이 약 두 달간의 부진을 딛고 드디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남부와 동부 전선에 잇따라 병력과 장비를 증강하면서 러시아군 방어선에 압박을 가해왔다.

30일(현지 시각) CNN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남부 자포리자주 노베와 하르코베 동쪽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대(對)전차 방어선 돌파를 시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29일엔 소셜미디어에 우크라이나군 장갑차가 들판을 내달리다 러시아군의 대전차 도랑에 빠져 뒤집어지는 영상도 공개됐다. 키이우포스트 등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군사 전문가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30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오피스 건물이 드론 공격으로 파손돼 있다. 이날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건물 2채가 파손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지난해 가을 이후 자포리자와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예상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약 900㎞에 걸쳐 방어선을 쌓았다. 폭이 최대 수㎞에 이르는 이 방어선은 기갑부대의 집중 공격에 대비해 이중 삼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1차 방어선은 수백~수천m 폭의 대전차 지뢰 지역과 보병 전투 진지로 구성된다. 그 뒤의 2차 방어선에는 뾰족한 피라미드 모양의 콘크리트 장애물 수백~수천 개와 깊이 4m, 폭 6m에 달하는 대전차 도랑과 철조망이 기다리고 있다. 서방 매체들은 이 콘크리트 장애물을 ‘용의 이빨’이라고 부르며 러시아군의 강력한 방어막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해 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전선인 벨고로트 지역에 설치해 둔 ‘용의 이빨’. 철근과 콘크리트를 활용해 만드는 것으로 탱크 등 기갑 장비의 전진을 막기 위한 장치다. 사진은 벨라루스가 생산해 러시아 측에 전달했다고 밝힌 것이다. /밀리타르니

우크라이나군은 실제로 지난 두 달간 1차 방어선을 뚫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전차와 장갑차를 잃었다. 전체 기갑 장비의 약 20%가 파괴됐다는 추정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한 시도 끝에 러시아군의 1차 방어선이 무력화된 곳이 나오기 시작한 셈이다. 친러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 장갑차가 대전차 도랑으로 돌진하는 영상을 놓고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방어선을 뚫지 못한 채 계속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반면 CNN은 “영상만으로 정확히 상황을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며칠 새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우크라이나 군용 차량이 러시아 핵심 방어선 '용의 이빨'을 향해 진격했다가 참호에 부딪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SNS

우크라이나는 최전선뿐만 아니라 러시아 후방에 대한 공격도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시 당국은 30일 “지난밤 무인기(드론) 공격 시도로 기업 사무실이 밀집한 ‘모스크바 시티’ 지역의 아이큐쿼터와 오코2 타워 등 건물 2곳의 벽면 총 여섯 층 외벽이 파손됐다”며 “명백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은 모스크바시가 금융·상업·엔터테인먼트 복합 지구로 개발해 온 곳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추가 공격 우려로)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국제공항을 잠시 폐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보안 요원 1명이 부상했고, 민간인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모스크바가 드론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4번째다.

크림반도에도 드론 공격이 벌어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가 드론 총 25대를 보내 크림반도를 공격하려 했으나 16대는 방공 시스템에, 다른 9대는 전자전 공격에 파괴돼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앞서 28일에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40㎞ 떨어진 러시아 서남부 항구도시 타간로크가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통신은 “미사일이 떨어지기 전에 요격돼 큰 피해는 없었으나 미사일 파편에 20여 명이 부상했고, 시내 건물 일부가 손상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로스토프주 아조프에도 미사일 공격을 했으나 역시 인근 방공망에 요격됐고, 잔해는 공터에 떨어져 별 피해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와 AFP통신은 “우크라이나의 보복 공격 가능성이 높다”며 “러시아 본토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러나 모스크바 시내 공격은 물론, 러시아 항구도시 공격에 대해서도 일제히 침묵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4일 러시아 국방부 인근 건물에 대한 드론 공격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의 특수작전”이라고 인정했었다.

☞용의 이빨(dragon’s teeth)

탱크와 장갑차 등 기갑 장비의 전진을 방해하기 위해 만든 피라미드 혹은 원뿔 모양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처음 개발해 사용했다. 땅 위로 솟아 나온 부분은 1m 내외지만, 길이 수십m에 달하는 콘크리트 기반에 여러 개씩 단단하게 심은 것을 길게 이어 놓아 포격·폭격으로 파괴하기 어렵다. 차량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여러 줄을 촘촘히 엇갈리게 배치한다. 짧게는 수백m, 길게는 수㎞에 걸쳐 만들어 기갑부대의 진격로를 제한하거나 한쪽으로 모는 데 이용한다. 한국에도 고양과 포천, 연천, 의정부 등 전시 북한 기갑부대의 예상 진격로에 30여 개가 설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