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덮친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거리에서 한 남성이 머리를 적시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살인적인 무더위가 미국을 덮친 가운데,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극빈층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AP통신은 미국 콜로라도주(州) 덴버에 사는 전직 벽돌공 벤 갈레고스(68)의 사연을 전했다. 낮 최고기온이 화씨 기준 세 자리 수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갈레고스는 에어컨이 없어 더위를 피할 수 없다. 화씨 100도는 섭씨 약 37.7도다. 40도가 육박한 폭염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의를 벗고 선풍기 바람을 쐬는 것뿐이다.

은퇴 후 일을 쉬고 있는 갈레고스는 매달 약 1000달러(약 130만원)의 사회보장연금을 받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갈레고스가 에어컨을 구입하거나, 그 전기세를 부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는 집으로 들어오는 열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에 매트리스를 덧대고, 지하실에 내려가 잠을 청하며 생활하고 있다.

갈레고스는 “에어컨을 사기 위해서는 12년 동안 꼬박 돈을 모아야 한다”라며 “만약 숨쉬기 힘든 상황이 닥치면 병원 응급실에 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폭염에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것은 갈레고스 뿐만이 아니다. AP통신은 “한때 사치였던 에어컨은 이제 생존의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미국 전역에서 기록적인 고온이 관측되고 있고, 수십 명이 사망하고 있다”며 “극빈층은 가장 더운 날을 어떤 방호구도 없이 견디고 있다”고 했다.

캔자스주(州) 캔자스시티의 한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멜로디 클락(45)도 살인적인 더위를 힘겹게 견디고 있다. 클락은 중앙 에어컨이 고장나 창문을 열고 생활하고 있지만, 그 역시도 낮 시간 대에는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머리를 물에 적시고 생활하며, 집 안에서 불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더운 날에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가 더위를 피하는 식이다.

클락에게는 10대 자녀 두 명이 있다. 아이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아이들이 어리지 않아서 불평하지 않는다”라며 “우리는 폭염에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시간주(州) 디트로이트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캐트리스 설리번(37)은 “에어컨이 있지만 냉방비를 아끼기 위해 켜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머리에 물을 붓고, 얼린 수건을 목에 걸어 더위를 식힌다. 설리번은 “이 지역의 사람들은 식비로 1달러만 지출한다. 에어컨을 살 여유가 없다”고 했다.

AP통신은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일수록 더 기온이 높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숲이나 바다와 가까운 지역은 자연이 기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경우 숲‧바다가 멀고 열을 유지하는 아스팔트 도로 인근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샌디에이고대 연구팀은 이러한 격차가 소득, 인종별로 나타나고 있으며 미국 전역에서 관측되고 있는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1056개 카운티를 조사한 결과 70% 이상 지역에서 빈곤층 또는 흑인·히스패닉계·아시아계 인구가 많은 지역이 더 더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