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시(市)에서 한 아이가 국제 구호 단체가 배급한 밀가루, 콩, 옥수수 등 식량 포대와 기름병을 앞에 놓고 앉아 있다. 여성들은 얼굴과 몸 전체를 덮는 부르카를 입었다. 2년 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은 더 나빠졌다. /EPA 연합뉴스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함락은 세계 최강을 자부하던 미국에 씻을 수 없는 굴욕이 됐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의 철군을 결정하는 이른바 평화협정을 탈레반과 체결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를 이행한 것인 만큼 미군의 철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당시 카불을 단숨에 집어삼킨 탈레반의 공세에 미군이 쫓기듯 도망가는 듯한 장면이 전 세계에 노출되면서 미국의 자존심은 땅에 떨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탈레반은 9·11 테러 발생 다음 달인 2001년 10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정권을 잃었다. 하지만 2021년 미군 철수 직후 바로 카불을 수복하며 ‘21년 전쟁’을 허무하게 했다.

이후 미국은 아프간 주둔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교훈을 얻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연방 정부 내 독립 감찰 기관인 아프간재건감찰관실(SIGAR)이 작업을 주도한다. 2008년 설립된 SIGAR은 미 정부 및 미군의 아프간 재건 사업의 방만한 운용, 현지 아프간 정부 관계자의 비위 등 문제점을 파악해 발표해 왔다. 분기마다 활동 내역을 담은 보고서를 연방 하원에 제출하고, 동시에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21세기 미국판 ‘징비록(조선 시대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돌아보며 쓴 책)’인 셈이다.

그래픽=송윤혜

SIGAR은 ‘아프간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잇달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통산 60번째 보고서는 지난해 초 이후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아프간전 ‘실패의 교훈’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뒀다. 보고서는 우선 미국이 일관성 있는 재건 계획을 세우는 데 몰입한 나머지 비현실적인 일정표가 만들어졌고,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사업들을 남발하게 돼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각종 재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미국과 국제사회, 심지어 미국 내부적으로도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졌다고도 분석했다.

재건 지원 명분으로 아프간 경제 체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지나치게 많은 돈이 투입된 것도 문제라고 봤다. 이런 돈을 자양분으로 삼은 아프간 현지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재건을 가로막는 위협”이었다고 지적했다. SIGAR은 “아프간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역사적으로 고위층의 부패 문제로 고통받아 왔다. 부패가 재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군 철수 직후 탈레반에 즉각 백기(白旗)를 든, 옛 아프간의 무능한 정부 방위군에 대한 평가는 싸늘했다. 미군이 주둔한 21년 동안 부정부패, 내부 다툼, 미국에 대한 만성적 의존 등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주둔 기간 186억달러(약 24조7956억원)를 투입해 최신 무기를 지급했지만, 이렇게 투입한 군수물자들이 어디서 사용되는지 추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간군은 부패와 비효율이 만연해 있었다고 SIGAR은 지적했다. SIGAR은 “1년 남짓 우크라이나 지원에 책정된 미 예산은 2002~2015년 아프간에 지원된 재건 자금 총액과 맞먹는다. (아프간과 비슷하게) 그 돈이 목적에 맞게 제대로 쓰였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