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뎀시로드에 있는 허버스 비스트로는 세계 최초로 배양육을 요리 재료로 쓰는 식당이다.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세포를 채취한 후 이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고깃덩어리로 만든 것으로 이른바 ‘실험실 고기’라고 불린다. 허버스 비스트로는 예약제로 닭고기 배양육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다. 지난 17일 이곳을 찾아가 닭고기 파스타를 주문하자 셰프 준총(Jun Chong)씨가 냉장고에서 진공 포장된 배양육을 꺼냈다. 마트에서 파는 닭가슴살과 모양새가 거의 같았다.

배양육은 콩·버섯 같은 식물성 재료로 고기를 흉내 낸 대체육과는 다르다. 대체육은 고기만이 가진 식감을 내기 어려운 반면, 이날 맛본 배양육은 진짜 닭고기와 맛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닭고기 특유의 퍽퍽한 식감도 그대로 느껴졌다. 다만 닭고기 특유의 냄새가 약해 향미가 떨어졌다. 실제 닭고기는 다리·날개·가슴 등 부위별로 맛과 식감이 조금씩 다르지만, 배양육은 다진 닭고기 이상의 맛을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배양육은 2010년대 초반부터 상품 개발이 본격 진행됐지만 생산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각국 정부에서 식품 허가를 받지 못해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12월 세계 최초로 싱가포르 정부가 미국 스타트업 잇저스트의 배양육에 대해 생산·판매를 승인,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미국 농림부가 배양육 기업 2곳에 대해 생산·판매를 승인했다.

싱가포르는 배양육이 식량 안보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인구 약 600만 싱가포르는 소비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한다. 국제 정세에 따라 요동치는 식량 가격의 여파를 덜 받기 위해 2019년 싱가포르 정부는 ‘2030년까지 식량 30%를 자급한다’는 국가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배양육은 물론이고 미생물로 만든 식품 등 각종 대체 식품 판매를 승인하고, 관련 스타트업에 보조금 지급을 늘리고 있다.

여기에는 배양육이 싱가포르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배양육 시장 규모는 2030년 250억달러(약 33조435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배양육의 세계적 상용화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배양육 생산 시설을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 생산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