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 시각)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보안관실이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머그샷(범인 식별 사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출두해 22분 간 체포 절차를 밟은 뒤 석방됐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구치소에 자진 출두해 미 전·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촬영헸다. 카메라를 노려보듯 응시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머그샷이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키우기보다 오히려 그의 지지자 결집력을 강화해 출마를 노리는 내년 대통령 선거 준비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트럼프가 이날 X(옛 트위터)에 복귀하며 올린 첫 게시물이 바로 이 머그샷으로 게시 약 10시간 만에 조회수 1억2000만회, 댓글 17만개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미 전·현직 대통령 중엔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은 정치적인 위기를 극복하거나 지지율이 반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불명예로 남기도 한다. ‘트럼프 머그샷’을 계기로, 미 역대 대통령의 ‘결정적 사진’들을 살펴본다.

미 역사상 최연소(43세)로 대통령에 당선된 존 F 케네디(1917~1963)는 생전 사진과 텔레비전 등 미디어의 힘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62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뛰어노는 어린 두 자녀를 케네디가 박수 치며 지켜보던 사진이 대표적이다.

존 F 케네디(1917~1963) 전 미국 대통령이 1962년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뛰어노는 어린 두 자녀를 지켜보고 있다./백악관

케네디는 정치 경력 초기부터 ‘이미지’의 힘을 중요시했고, ‘국민들과 연결되기 위해선 개인적인 일상이 정치와도 맞물려야 한다’는 신조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CNN은 어린 자녀와 다정한 장면을 연출한 이 사진이 “젊은 세대(케네디)가 권력의 정점에 부상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케네디가 암살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1037일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쿠바 미사일 위기와 소련과의 냉전 관계, 미국 내 활발했던 민권 운동 등으로 바빴던 와중에도 이 사진을 통해 ‘화목한 가정을 둔 잘생기고 부유한 리더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존 F 케네디 암살 약 두 시간 후에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서열에 따라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케네디의 배우자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옷엔 아직 총격 사건 때 튄 혈흔이 묻어 있는 상태다.

젊은 대통령은 비극적인 암살 사건으로 세상을 떴고, 후임엔 서열에 따라 린든 존슨 당시 부통령이 취임했다. 암살 후 불과 2시간8분 후에 급히 열린 취임식엔 케네디 대통령의 배우자인 재클린 케네디 여사도 참석했다. 총격 사건 때 튄 혈흔이 묻은 코트를 입고 침울한 표정으로 취임식에 참석한 모습은 당시의 비극과 혼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CNN은 “극단적 공포의 시간에 정부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게 연출된 사진”이라고 전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당해 8월 9일 헬리콥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나면서 환한 웃음과 함께 두 손으로 ‘브이(V)’를 그렸던 모습/트위터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사퇴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9일 헬리콥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났다. 그런데 그는 침울한 표정이 아닌, 환한 웃음과 함께 두 손으로 ‘브이(V)’를 그리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이란 오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 모습은 닉슨의 모순적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으로 남았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베트남전쟁(1960~1975)에서 승리하겠단 신호로 ‘브이’ 세레모니를 자주 사용하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하지만 이날 선보인 세레모니는 ‘승리에 대한 경례’가 아닌 ‘워터게이트와의 싸움에서 진 뒤 백악관에서 물러나는 초라한 퇴장’이란 오명을 감출 수 없었다고 CNN은 분석했다.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 '브이(V)'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AP 연합뉴스

이후 닉슨의 ‘브이’ 세레모니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 등에 의해 패러디됐다.

9·11 테러 발생 사흘 뒤인 지난 2001년 9월 14일,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붕괴 현장을 방문해 건물 잔해더미 위에서 확성기를 들고 연설을 하고 있다./georgewbushlibrary

미 43대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2001년 9·11 테러 당시 현장에서 했던 ‘확성기 연설’의 사진은 약 3000명이 사망한 최악의 비극 직후 찍혔다. 폐허 위에서 소방대원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확성기 연설’을 하는 모습은 9·11테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남았다.

테러 3일 뒤 사건 현장인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부근을 찾았던 그는 현장 수습 중이던 소방대원들을 향해 확성기를 들고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전 세계도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 건물을 무너뜨린 이들도 곧 우리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이어 “미국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연민을 보냅니다.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줘 고맙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CNN은 당시 부시의 연설이 “사상 최악의 테러로 상처 입은 나라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이후 길게 이어진 두 개의 전쟁(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을 진행하며 ‘복수의 시대’로 돌입했다. 이슬람을 자극한 중동 정책으로 9·11 테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 부시는 ‘재건과 복수’의 이미지를 내세워 2004년 대선에서 결국 재선에 성공했다.

백악관에서 빈 라덴 제거 작전 중계를 보는 버락 오바마(왼쪽에서 둘째) 당시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그 왼쪽) 당시 부통령(현 미 대통령). /백악관

9·11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은 그로부터 10년 후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1년 5월 백악관 상황실에서 빈 라덴 제거 작전을 관료들과 함께 보고받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유명하다. 사진 속 오바마는 점퍼를 걸친 와이셔츠 차림에 초조한 표정으로 TV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왼쪽으론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브리핑용 노트북과 종이, 커피잔 등이 자유롭게 놓인 모습이다.

2019년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실 테이블 정 중앙에 앉아 작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셰일라 크레이그헤드

특히 오바마가 마샬 B 웹 공군 준장 등 군 참모들에게 정중앙 좌석을 내어주고 옆자리에 앉은 ‘탈(脫)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 지지율 상승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19년 10월 이슬람국가(IS) 수괴였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사살 작전 당시의 상황실 장면을 공개했는데, 오바마와 달리 정중앙에 앉은 채 관료들과 다소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