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내맞선'의 배우 안효섭./SBS Catch 유튜브

해외에서 한국 배우를 사칭한 피싱 범죄에 피해를 입을 뻔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19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의 오피니언 섹션에 사회인류학자인 필자 프리실라 래천 린이 글을 실었다. 린은 “고백할 게 있다. 결혼 52년차, 78세 할머니인 저는 K-드라마 중독자가 됐다”며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또 TV를 보고 로맨스에 빠진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린을 한국 드라마팬으로 만든 것은 넷플릭스 드라마 ‘나빌레라’다. 평생의 꿈인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일흔의 할아버지와 스물세살 발레리노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린은 “젊은 발레리노를 연기한 배우 송강이 화면에 등장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며 이후 더 많은 드라마를 즐기게 됐다고 했다.

린은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며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소셜미디어에 들어가 ‘좋아요’를 누르고 가끔 댓글을 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던 중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좋아하는 배우들에게서 다이렉트 메시지가 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동안 남긴 수많은 댓글 덕분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 대단한 남자들이 사려 깊고 재미있는 나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린은 “이쯤에서 내 지능을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실제 배우 본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사춘기 시절의 주목받고 싶은 욕망 혹은 로맨스 중독이 나를 붙들었다. 그래서 앱을 다운받아 스타들과 채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린은 “대화를 이어가던 중 드라마 ‘사내맞선’ 속 배우 안효섭인 줄 알았던 사람이 내게 신용카드 정보를 요구했다”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팬심을 이용한 피싱 수법에 걸려들 뻔한 것이다. 그는 “사기꾼이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피했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며 “나는 채팅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개인 메시지를 모두 무시한다”고 했다.

린는 “분노가 가라앉은 후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봤다”며 “관심을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유명인사의 후광이 나에게 비춰지는 순간 갑자기 우리는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짜 한국 배우들은 내게 달콤한 헌신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러나 환상이 무너진 뒤 내가 배우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무서운 일로부터 벗어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린는 “드라마 배우들에 대한 몰입은 인생의 마지막 장으로 접어든 나를 비롯해 내 또래 많은 이들이 느끼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하는 도피처였다”며 “2주간 이어진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드라마를 즐기는 일과 배우에 대한 집착을 이제 구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배운 게 있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K드라마 중독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며 “할머니가 로맨스를 즐기도록 좀 내버려 두라. 물론 나는 여전히 TV 앞에 딱 붙어 산다”고 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