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82) 감독이 1985년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경영권을 일본 민영 방송사 닛폰텔레비전홀딩스(닛테레)에 넘기기로 했다. 미야자키 감독의 10년 만의 복귀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다음 달 25일 국내 개봉하는 등 그의 작품 활동은 계속된다. 사진은 2013년 10월 도쿄 지브리 스튜디오 인근 개인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활짝 웃는 미야자키 감독./이덕훈 기자

“미야자키라는 이름으로 지브리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후계자 문제는) 더 넓은 시야로 보는 것이 좋겠다”(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창업자) “지브리는 한 사람이 짊어지기엔 너무 큰 존재가 되었다.”(미야자키 하야오 아들 미야자키 고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82) 감독이 1985년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의 경영권을 일본 민영 방송사 닛폰텔레비전홀딩스(닛테레)에 넘기기로 했다. 당초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으나, 부자(父子) 모두가 이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닛테레가 지브리를 인수하게 됐다.

닛테레와 지브리는 21일 도쿄의 지브리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수 소식을 발표했다. 닛테레는 다음 달 6일 지브리 주식 지분 42.3%를 취득해 최대 주주에 오른 뒤 본격적으로 지브리를 자회사화할 방침이다. 이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인 22일 도쿄 증시에서 닛테레 주식은 20% 이상 급등해 한때 거래가 일시 중지됐고 전일보다 13.5% 올라 거래를 마쳤다.

지브리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애니메이션을 미야자키 감독의 지휘 아래 제작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로 ‘애니메이션 업계에 선풍을 일으키자’라는 의미로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지었다고 알려졌다.

21일 일본 도쿄 스튜디오 지브리 본사에서 스즈키 도시오(오른쪽) 지브리 사장이 스기야마 요시쿠니 닛폰텔레비전홀딩스 대표이사 회장과 기자회견 자리에서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 인형을 들고 있다./스튜디오 지브리 홈페이지

지브리의 작품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두꺼운 팬층이 있다. 2004년 개봉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한국에서 261만 관객을 끌어모아 ‘너의 이름은’(2016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개봉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본 애니메이션 자리를 지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지난해 작품으로 일본 영화 중 처음으로 한국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스즈메의 문단속’ 곳곳엔 지브리에 대한 오마주(경의 표시)가 등장한다. 그만큼 미야자키와 지브리가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는 뜻이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제작뿐 아니라 도쿄 외곽의 ‘지브리 미술관’, 아이치현 나가쿠테시 ‘지브리 파크’ 등도 운영하고 있다.

지브리를 품게 된 닛테레는 일본의 대형 미디어 회사인 요미우리그룹에 속한 민영 방송사다. 지브리와 닛테레의 인연은 닛테레가 미야자키 감독의 대표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1985년 TV에서 처음 방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에도 닛테레는 정기적으로 지브리 작품을 틀었다. 지브리 작품 ‘마녀배달부 키키’에 제작 출자도 하는 등 지브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양사는 앞으로 지브리가 작품 제작에 전념하고 닛테레는 지브리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경영 부문에서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브리에 따르면 닛테레의 인수는 지브리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지브리 사장이자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스즈키 도시오가 닛테레의 스기야마 요시쿠니 회장과 온천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스즈키는 스기야마 회장에게 “지브리가 앞으로도 작품 만들기에 집중하도록 경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스기야마가 “(우리의 인수로) 앞으로도 지브리 작품을 응원하고 지브리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지키게 된다면” 인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스즈키 사장은 “지브리는 상상을 뛰어넘는 큰 존재이며 개인이 아닌 커다란 힘을 빌리지 않고는 잘 굴러갈 수 없다”며 “관계가 오래된 닛테레에 경영을 부탁드리면 주위에서도 납득해주실 것으로 생각했다”고 인수 배경을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1988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한장면./스튜디오 지브리

지브리는 미야자키 감독의 나이가 82세로 고령이고, 프로듀서인 스즈키 대표도 75세여서 후계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심해왔다. 앞서 지브리 측은 미야자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에게 몇 차례 경영 의사를 물었으나 그가 거듭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야지키 고로는 성명서를 통해 “(지브리 스튜디오를) 혼자 부담하는 것은 무리”라며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다고 교도 통신은 전했다. 실제로 고로는 제작한 작품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당초 그는 “아버지가 이뤄낸 단계까지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며 공원이나 건물 녹지를 설계하는 조경 컨설턴트로 직업을 택했다. 1998년 지브리 미술관의 디자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지브리와 일하기 시작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한편 미야자키 감독은 몇 차례 은퇴 선언을 하고 번복했다가 지난 7월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보였다. 역대 최다 제작비를 투입해 7년에 걸쳐 만들었다. 2013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 비행기였던 ‘제로센’ 개발자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 이후 10년 만에 신작으로 한국에선 다음 달 25일 개봉한다. 스즈키 사장은 현지 매체 ‘고세’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은퇴는커녕 죽을 때까지 영화를 계속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앞으로 지브리의 명예 회장을 맡을 예정이다. 주식 양도 완료 후 현재 닛테레의 전무인 후쿠다 히로유키가 지브리의 차기 사장을 맡기로 했다고 양사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