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는 24일(현지 시각) 뉴욕 할렘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했다. /윤주헌 특파원

화려한 조명은커녕 노란빛을 내는 전등만 천장에 달려 있었고, 커다란 커튼도 없었다. 무대에는 검정색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소프라노 조수미가 한복을 차려 입은 흑인 여학생의 손을 잡고 나타나자 객석에서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에 있는 ‘데모크라시 프렙(Democracy prep) 할렘 하이스쿨’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조수미가 공연을 했다. ‘데모크라시 프렙과 큰 꿈을 꾸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날 공연은 조수미가 학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무료 공연을 하고 싶다고 제안해 성사됐다.

소프라노 조수미는 공연 마지막 순서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학생들과 '아리랑'을 불렀다. /윤주헌 특파원

2005년 세워진 이 학교는 설립자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비롯해 예절을 중시하는 한국식 인성 교육을 도입했다. 지난 2013년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이 학교 졸업식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는 등 한국과 여러 방면에서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이날 조수미 공연이 열린 강당에서도 양팔에 태극 4괘를 의미하는 ‘건곤감리’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조수미가 할렘의 학교 강당 무대에 선 계기는 올해 중순 그가 “한국 전쟁 70주년을 맞아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는데 학생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따로 하고 싶다”고 주변에 밝힌 데서 시작됐다. 주로 저소득층 가정 학생이 많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 학교가 선정됐는데, 학교 측은 크게 반기면서도 걱정도 했다고 한다. 이 학교엔 피아노가 한 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수미는 “다 이해한다. 정말 괜찮다”고 했지만, 학교 입장에서는 내심 마음에 걸려 결국 약 1000달러(130만원)를 들여 그랜드피아노를 하루 빌렸다. 무대 옆 스피커와 천장에 달린 조명도 이날 조수미 공연을 위해 빌려온 것이다. 소박하지만 뜻깊은 무대가 그렇게 꾸려졌다.

소프라노 조수미(가운데)가 24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의 '데모크라시 프렙 할렘 하이스쿨'에서 무료 공연을 연 뒤 학생·교직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수미는 이날 프랑스 작곡가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의 오페라 곡을 시작으로 약 한 시간 동안 총 다섯 곡의 노래를 불렀다. 공연 내내 학생들은 휴대전화를 들어 공연을 찍거나 숨죽인 채 지켜봤다. 마지막에 조수미가 직접 반주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른 뒤 공연을 끝내자 학생들은 전부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기립 박수를 쳤다. 한국어로 “사랑해요”를 외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공연 사회를 본 12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프란체스카는 “어느 한 곡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노래가 환상적이었다”며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수미는 공연이 끝난 뒤 “음악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고 다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조수미와 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의 줄이 이어졌다. /윤주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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