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 전 총리 부고 소식을 전한 기사를 베이징의 한 시민이 읽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7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리커창(68) 전 총리에 대한 추모가 중국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어지고 있다. 공식 부고 발표 이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중국 당국의 분위기와는 상반된다. 리커창은 생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라이벌로 불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 28일 오전 중국의 대표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리커창 동지 부고’가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으나 오후에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급상승 검색어’로는 시 주석의 경제 정책에 관한 키워드가 올라왔다.

28일 오후 4시(현지시각) 기준 웨이보에서 ‘리커창 동지 사망’ 해시태그(#)는 26억회 이상 조회됐다. 해당 해시태그를 단 글은 62만건 이상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그의 생전 발언을 공유하며 추모하고 있다.

리커창이 지난해 8월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 뒤 말한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長江黃河不會倒流)”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중국은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며 국경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시기였다.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경제 성장을 이끈 덩샤오핑 앞에서 시진핑의 코로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었다.

리커창이 어린 시절 살았던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그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쌓여있다. /AP 연합뉴스

2020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회의 폐막 기자회견 때 발언도 재조명되고 있다. 리커창은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중국인) 6억명의 월수입은 1000위안(약 17만원)”이라며 “이 돈으로는 도시에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했다. 이 발언은 시진핑을 향한 정면 반박으로 읽혔다.

지난 3월 총리 퇴임을 앞두고 국무원 판공청 직원들과의 작별 인사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幹 天在看)”고 말했다. 당시 중국 전문가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차지한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미가 담긴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네티즌들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지와 함께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편히 가세요” 등 메시지를 작성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반응도 많았다.

리커창이 어린 시절 살았던 안후이성 허페이시와 추저우시 일대엔 중국인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웨이보에는 수많은 사람이 고인이 살았던 집 앞에 국화를 놓으며 그를 추모하는 영상이 게재됐다.

28일 오후 4시(현지시각) 기준 '리커창 동지 사망' 키워드는 26만회 이상 조회됐다(상단 사진). 인기 검색어 순위에는 '급상승 검색어'로 시진핑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회의 관련 키워드가 최상단에 올라왔다. /웨이보

그러나 어쩐 일인지 28일 오후 웨이보 ‘인기 검색어 순위’ 10위 안에는 리커창 관련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실시간 인기 검색어 화면 위에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여정은 중국 동북 지역의 활성화를 촉진한다’는 키워드가 떴다. 시진핑이 주재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27일 회의에서 중국 동북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에 관해 논의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키워드는 핫서치 리스트 최고 순위 41위에 불과하지만 ‘급상승 검색어’라는 이유로 검색어 순위 상단을 차지했다.

28일 오후 10시 기준 ‘리커창 동지 사망’ 검색어는 다시 7위까지 올랐다. 네티즌들의 검색량이 오히려 더 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기검색어 순위 가장 윗자리에는 여전히 시진핑 경제 정책과 관련한 키워드가 자리했다.

리커창은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커창(오른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 개막식에서 시진핑 주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리커창은 이날 정부 보고를 끝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AFP 연합뉴스

서방 매체 등 일각에선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들이 리커창의 사망 소식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인민일보,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주요 관영매체들은 27일 오전 8시쯤 리커창이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소식만을 단신으로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공식 부고가 나온 건 10시간 후였다. 중국은 이날 오후 6시 30분에 낸 부고에서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에도 중국 매체들은 당국 발표문만을 그대로 전할 뿐 추가 소식은 전하지 않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리커창이 상하이 한 호텔에서 수영한 후 심장마비가 와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고 전했다. SCMP는 “중국 관영 매체들의 리커창 사망 발표 처리는 해당 비극이 중국 당국에 완전한 충격이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했다.

상하이 정법대 천다오인 교수는 해당 매체에 “리커창의 죽음에 중국 최고 지도부가 완전히 놀란 것 같다”며 “관영 매체들은 와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당 지도자들의 경우 완전한 부고를 준비하는데 리커창의 부고는 준비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추측했다. 이어 “중국은 리커창 죽음에 관한 자세한 사항을 결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러나 당국이 대중에 공개할 수 있는 사실을 발표하고 신속히 장례 준비에 돌입한 것은 상황을 관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