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로이터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유럽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지쳤다”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다른 나라 외교관을 사칭한 러시아 유튜버들의 장난 전화에 낚였기 때문이다. 1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 따르면, 각각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유튜버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는 이날 멜로니 총리와 한 통화 녹음을 러시아판 유튜브인 ‘러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13분 분량의 통화 녹음에서 멜로니는 “진실을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탈출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문제는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양측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출구 전략을 찾는 일”이라고 했다.

“이탈리아가 올 들어 아프리카 이민자 12만 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유럽연합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멜로니의 쓴소리도 통화 녹음이 공개되면서 들통났다.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 등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입성하는 많은 이민자들의 첫 도착지라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표적인 유럽 국가다.

보반과 렉서스는 자신들이 아프리카연합의 고위 외교관이라고 멜로니를 속여 이탈리아 총리의 속내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총리실은 “멜로니 총리가 (장난 전화에) 속은 것에 대해 유감스러워하고 있다”며 “통화 당시는 9월 18일이었는데, 이들은 멜로니 총리가 9월 19~21일 열린 유엔 총회 당시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만나 불법 이주민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는 사실을 적극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화려한 장난 전화 이력을 갖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도 이들에게 속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민감한 사안을 둘러싼 속내를 들켰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롤링, 영국 가수 엘턴 존도 이른바 ‘보반·렉서스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보반과 렉서스는 멜로니 총리가 다른 국가 지도자들에 비해 진솔한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이 어떻게 정상급 국가 지도자들의 연락처를 얻었는지, 어떻게 이들의 말문을 열게 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라 레푸블리카는 “세계 지도자들과의 성공적인 통화 연결을 위해 이들이 러시아 보안 기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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