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연방 하원 교육 노동위원회에 참석한 클로딘 게이(왼쪽) 하버드대 총장과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A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 단체 하마스의 전쟁을 계기로 미국 대학가에서 벌어진 반유대주의 논란과 관련해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미국 아이비리그대 총장들이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다 호된 질타를 받고 고개를 숙였다. 표현의 자유에 치우친 나머지 반유대주의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치면서 성난 여론에 불을 지른 모양새가 됐다.

5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연방 하원 교육·노동위원회 주최 반유대주의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유대인을 학살하자는 일부 학생의 과격한 주장이 따돌림과 괴롭힘을 금지하는 대학의 윤리 규범 위반이자 징계 대상이 아니냐”는 엘리스 스터파닉 의원(공화당)의 질문에 “그런 위협이 (말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괴롭힘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스터파닉 의원이 “징계 대상이 아닌지 ‘예·아니오’로 답해달라”고 재차 묻자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 역시 같은 질문에 “개인적으로 끔찍한 발언”이라면서도 “하버드대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같은 총장들의 답변은 논란을 일으켰다. 애매모호한 말로 논점인 ‘학생의 과격 언행에 대한 징계 가능성’을 교묘하게 피해 갔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는 청문회 직후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4500명이 넘게 서명했다. 학교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 조시 셔피로 주지사는 “총장의 발언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집단 학살을 비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돼서는 절대 안 되는데, 그 간단한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매길 총장은 “(청문회 당시) 나는 ‘표현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미국 헌법과 우리 대학의 오랜 정책에만 집중했다. 유대인 학살 주장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폭력을 촉구하는 것이라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며 사과문을 냈다. 게이 총장 역시 이날 “유대인을 비롯해 어떤 종교·인종에 대해서도 폭력이나 학살 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교내에서 유대인 학생을 위협하는 자들은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 최고 명문대 아이비리그 총장들이 청문회에서 머뭇대는 모습을 보인 것은 표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지식사회 전통적 풍토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벌인 잔혹한 살상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도를 넘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는 상태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오판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시민 단체 파이어(FIRE)의 윌 크릴리 법률이사는 뉴욕타임스에 “총장들의 발언이 법적으로는 옳을 수 있으나, 청문회 자리에서 고작 ‘표현의 자유’만을 고수하는 모습은 정말 답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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