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마린카의 모습. /로이터 연합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를 상대로 지난 6월 시작한 대반격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전략적 요충지를 빼앗긴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 장관은 25일(현지 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우리 군(러시아군)이 오늘 도네츠크의 격전지 마린카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마린카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州)의 소도시로, 도네츠크주 상당 부분이 지난해 러시아군에 넘어가는 동안에도 우크라이나군이 지켜낸 곳이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피점령지를 수복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 중 하나로 이곳을 활용해 왔으나, 러시아 수중에 넘어갔다. 쇼이구 장관은 “마린카 점령으로 우크라이나 포병을 (도네츠크시) 사정거리 밖으로 몰아낼 수 있게 됐다”며 “러시아군이 (서쪽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고 했다. 푸틴 역시 이 보고를 받고 “러시아군이 더 넓은 작전 지역으로 진격할 기회를 얻었다”며 치하했다.

그래픽=양진경

두 사람의 대화는 러시아 국영 TV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다. 마린카 장악을 중대 전과(戰果)로 내세우며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꺾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여름부터 1년 6개월여간 마린카 점령을 시도해 왔다. 이 인근의 우크라이나 포병이 자주포와 고속 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하이마스)으로 도네츠크의 러시아군을 계속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엔 비상이 걸렸다. 동부의 주요 요충지들이 러시아군에 추가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고, 격전 끝에 어렵게 탈환한 남부 몇몇 마을도 다시 러시아군의 위협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발표를 즉각 부인했다. 올렉산드르 슈투푼 우크라이나군 대변인은 “우리 군이 여전히 마린카 시내에 있으며,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외신들은 그러나 러시아 측 주장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가 마린카의 일부를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며 “동부 전선의 핵심 요새 중 하나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등도 “러시아군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지난 5월 바흐무트 점령 이후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대반격 이후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다. 지난 10월부터 오히려 러시아의 공세에 밀리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동부 전선의 또 다른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와 남부 자포리자 지역에서 대규모 공격을 시도했다고 현지 매체 우크린포름이 전했다. 러시아군은 특히 우세한 항공 전력을 활용한 ‘공지전(육군과 공군의 연합 공격)’에 적극 나섰다. 우크린포름은 “러시아군은 최근 전폭기가 유도폭탄을 퍼부은 뒤, 보병이 진격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육군이 단독으로 집중 포격 후 보병을 진격시키던 기존 전술에서 달라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사 전문가들은 수세에 몰린 최근 상황이 “전선의 제공권(制空權)이 러시아에 완전히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지난 7일 미사일과 드론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발전소와 연료 저장 시설을 공격하는 등 최근 우크라이나 후방에 대한 집중 공격을 재개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이를 막으려 일선의 방공 무기를 후방으로 돌리자 전선의 방공망에 빈틈이 생겼고, 러시아군이 이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지상군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자국 전폭기의 폭격을 도우려고 최신 조기 경보기 배치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군은 패트리엇 등 최신 무기 일부를 다시 전방에 보내 반격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25일 “지난 3일간 동·남부 전선에서 러시아 전폭기 총 5대를 격추했다”고, 또 26일엔 “이란제 드론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러시아 상륙함 노보체르카스크호를 순항미사일로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전세를 완전히 뒤집으려면 F-16 전투기 지원을 앞당기고 방공 미사일을 추가 지원하는 등 서방의 지원 확대가 시급하단 지적이 나온다. NYT는 “미국의 각종 지원이 지연되면서 우크라이나군 일부가 작전 규모를 축소해야 했다”며 “러시아가 전장 대부분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마린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주도 도네츠크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20㎞에 위치한 인구 1만명 소도시다. 지난 2014년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에 점령당했다가 우크라이나 정부에 수복됐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곳을 빼앗으려는 러시아군과 지켜내려는 우크라이나군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져 왔다. 올해 3월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초토화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