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미영 다국적군의 전투기가 홍해에서 국제 선박을 공격해온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민병대를 겨냥해 예멘의 군사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수행하기위해 이륙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물류·에너지 교역의 핵심 지역인 중동 아라비아반도 일대에서 미국 등 서방과 이란을 필두로 한 ‘저항의 축’ 세력이 잇따라 충돌하며 확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수년간 코로나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다 이제 간신히 회복하려는 세계 경제에 중동발 공급망 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11일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서방 다국적 함대는 아라비아반도 서쪽 끝, 홍해와 접한 예멘 국토 곳곳을 미사일로 폭격했다. 지난 10월 이후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를 지지한다며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들을 잇달아 공격한 예멘의 이슬람 무장 단체 후티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CNN은 “사나·사다·다마르·호데이다 등 예멘의 후티 장악 지역 내 군사 시설 12곳이 표적이 됐다”고 했다. 미군이 이라크·시리아 내 친(親)이란 무장 세력을 타격한 적은 있었지만 예멘 공격은 처음이다. 같은 날 아라비아반도 동쪽의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 유조선이 이란에 나포된 사건도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중동 지역의 충돌이 전쟁 수준으로 번질 경우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끝날 조짐이 안 보이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세계 정세·경제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과 동맹의 이날 예멘 폭격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그토록 피하려고 노력해온 중동에서의 확전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성명을 통해 “이번 공습은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국제 상선들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을 가한 데 대한 직접적 대응”이라고 밝혔다. 후티 반군이 11월 중순부터 홍해에서 사상 최초로 대함탄도미사일(ASBM)까지 동원해 미·영 선박을 포함한 국제 선박들을 27번이나 공격했기 때문에 “방어적 행동”을 취했다는 뜻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 항로인 수에즈 운하와 이어진 홍해는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주요 교역로로 ‘물류 동맥’이라고도 불린다. 한국 무역 물동량은 약 16%가 홍해를 지난다. 미국 유조선이 이란에 나포된 호르무즈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의 해상 진출로이기도 하다. 중동 지역의 분쟁 확산으로 해로가 막혀 공급망이 망가질 경우 유가(油價)·물류비 등이 상승해 간신히 잡히기 시작한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위험이 있다. 이날 북해 브렌트유 가격이 2.2% 상승하는 등 중동발 위기에 대한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는 전날 “홍해에서 (후티의) 화물선 공격으로 지난해 11~12월 세계 무역이 1.3%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미국은 홍해를 지나는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달 18일 미 해군 5함대를 주축으로 영국·프랑스·바레인·캐나다 등이 참여하는 다국적 함대인 ‘번영의 수호자 작전’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후티가 홍해와 접하는 아덴만을 지나던 선박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위협을 멈추지 않자 결국 11일 후티 근거지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미 당국자는 “이번 공습은 후티 반군의 군사력을 저하하고 세계 무역의 중요한 항로인 홍해에서 미국과 국제 선박을 방어하고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됐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이날 공습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도 이날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는 홍해의 안전과 항행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신규 군사작전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에서 미국 유조선을 나포하면서 아라비아반도 동쪽의 긴장도 고조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의 해상 진출로다. 이란 타스님통신은 이날 이란 해군이 오만만 해역에서 이란 석유를 미국으로 밀수한 혐의로 미국 국적 유조선 ‘세인트 니컬러스호’를 나포했다고 밝혔다. 이 배는 당초 마셜제도 국적의 유조선으로, 지난해 제재 대상인 이란산 원유 98만 배럴을 밀수하다가 미 당국에 적발돼 벌금을 냈다고 한다. 이후 이름을 바꿔 운항해 왔는데, 이란 측에서 이를 빌미로 삼은 것이다.

한편 이날 벌어진 두 사건으로 이란과 서방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가 중동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간 서방 국가들이 이란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실질적 배후로 지목해왔다. NYT는 “카타르와 오만 등 중동 내 미국의 동맹국들은 후티에 대한 (서방의) 공습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다른 이란 대리 세력과 더 깊은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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