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독일 베를린 연방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휴대전화로 불을 밝히고 있다. 이날 경찰 추산 최대 10만명이 참가한 것을 포함해 지난 19일부터 사흘간 독일 전역에서 이어진 AfD 반대 집회에 약 150만명이 참가했다고 주최 측은 집계했다. 앞서 AfD 소속 정치인들이 외국 출신 독일 시민 등 이주자 대량 추방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커졌다. /AFP 연합뉴스

일요일인 21일 오후 4시 독일 수도 베를린 연방 국회의사당 앞 광장은 몰려드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두 달 전 비밀 모임에서 이민자 대량 추방 계획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다. 주최 측은 이날 1000명쯤 모인다고 신고했는데, 많게는 100배인 10만명이 참가한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독일어 단어 ‘Ekelhaft(역겨운)’의 마지막 글자만 바꾼 ‘EKELH-AfD(역겨운 AfD)’라는 피켓 문구도 눈에 띄었다. 집회에서 만난 슈테판(62)씨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이민자 배경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를 보여주려 나왔다”고 했다.

반(反)난민·반유럽 등 노선으로 최근 지지율이 급부상한 AfD에 반대하는 집회가 지난 주말 소도시를 비롯한 독일 전역에서 열렸다. 2013년 창당한 이 정당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재임 당시인 2015년부터 본격화된 독일의 이민자 포용 정책과 2021년 중도 좌파 사회민주당 집권 이후 경제난으로 세를 불렸는데,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10일 독일 탐사 매체 ‘코렉티브’의 한 보도 때문이다. 이 매체는 롤란트 하르트비히 당 대표 고문 등 AfD 당원 4명을 포함한 극우 인사 22명이 지난해 11월 25일 베를린 외곽 포츠담의 한 호텔에서 이주민 대량 추방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망명 신청자 추방은 물론이고, 독일 국적이 있는 이민자의 본국 ‘재이민’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독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많은 독일인들에게 1933~1945년 나치 독일의 인종 청소를 연상시킨 이 비밀 회동 장소가 1942년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논의한 ‘반제 회의’가 열린 반제 호숫가에서 불과 수㎞ 떨어져 있어 “뼈아픈 과거가 반복됐다”는 말이 나왔다. 베를린 집회에서 안니(16)씨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회에 나왔다”며 “역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이티 출신 이민자 부스톤씨는 ‘우리 없이는 안 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반대 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나치는 안 돼’(왼쪽) ‘역겨운 AfD’(오른쪽)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AP·AFP 연합뉴스

주최 측은 사흘간 전국 114개 도시에서 약 150만명이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21일 뮌헨 집회에는 2만5000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4배인 10만명(경찰 추산)이 참석, 경찰이 안전을 이유로 집회를 해산시키기도 했다. 베를린·뮌헨·퀼른뿐 아니라 라이프치히·드레스덴 등 AfD의 텃밭인 옛 동독 지역에서도 주말 시위가 이어졌다. AfD는 9월 열리는 동부 튀링겐주·작센주·브란덴부르크주 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들 옛 동독 지역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자녀와 처가 식구 등 6명과 브란덴부르크주의 포츠담에서 왔다는 다니엘(48)씨는 “AfD의 높은 지지율이 무섭다”고 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21일 영상 메시지에서 “혐오와 우익 극단주의에 맞서 일어섰다”고 했고, 앞서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민자들을 쫓아내려는 계획은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이라고 했다. 조 케저 전 지멘스 최고경영자는 독일 기업인들에게 AfD에 반대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최근 독일 정치권 일각에서 AfD의 정당 해산 방안 논의까지 나오자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비밀 회동에 자신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21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하르트비히는 해고했다”면서도 ‘코렉티브’ 보도는 AfD 방침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체류 허가가 없는 사람이나 테러 위험이 있는 이중국적자 등을 법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독일에 있는 110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독일에서 장기적으로 미래가 없다. 이들에게 복지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실수”라며 종전의 반난민 노선을 강조했다. 비밀 회동 논란으로 반난민 등 AfD 노선 지지자들이 줄어들지는 미지수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안드레아 뢰멜레 헤르티 행정대학원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집회는 침묵하던 다수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라면서도 “(반대 집회가) AfD 지지율이 떨어질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라고 했다. 20일 여론조사 기관 ‘인사’에 따르면, AfD 지지율은 22%로 제1 야당인 기독민주당(CDU·30%)에 이어 2위다.

☞독일을 위한 대안(AfD)

반(反)난민·반이슬람 노선의 극우 정당. 약칭 ‘AfD’는 독일어 정당명 ‘Alternative für Deutschland’의 앞 글자를 땄다. 2013년 남유럽 국가 구제 금융에 반대하는 반 EU(유럽연합)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창당했다. 2017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94석, 2021년 선거에서 83석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