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끔찍한 살해를 저지른 후 감쪽같이 사라진 범인들.
수십 년 전 일어났지만 아직까지도 진범을 잡지 못한 장기 미제사건들이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사건 발생 당시보다 수사력이 발생한 오늘날에도 범인의 생존여부조차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상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사건들의 면면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조디악이 1969년 지역 신문사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낸 편지.

1969년 8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샌프란시스코 일대 지역신문사 세 곳에 각각 편지 한 통씩이 배송됐다. 편지에는 자신이 10개월 전 허먼 로드 호수 살인 사건과 한 달 전 블루락 골프장에서 발생한 총격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며, 동봉한 암호를 해독하면 자신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허먼 로드 사건과 블루락 사건은 지역 사회를 경악시킨 살인사건이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었다.

발송자는 신문사에 대담한 요구를 했다. 자신이 보낸 편지를 각 신문의 1면에 인쇄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주말 밤 동안 12명의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고 협박했다. 아래 편지다. 개인용 컴퓨터(PC)가 개발되기 전이라 손으로 썼다.

사람을 더 죽이겠다는 협박에 신문사들은 다음날 편지, 그리고 그가 동봉한 암호를 실었다. 이와 함께 당시 지역 경찰서장 잭 스틸츠가 범인에게 전하는 내용을 게재했다. 스틸츠는 살인자에게 “당신이 쓴 편지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더 많은 사실이 담긴 두 번째 편지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범인에 대한 증거를 더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엿새가 지난 8월 7일, 새로운 편지가 도착했다. “조디악 가라사대(This is Zodiac speaking)”라고 시작하는 편지였다. 발송자는 편지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관련한 세부 정보를 담고 “경찰이 암호를 해독하면 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디악’은 영어로 황도 12궁(별자리)을 뜻한다.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살인자 ‘조디악 킬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37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한 그는 1974년까지 언론사에 “조디악 가라사대”로 시작하는 편지와 암호문을 보낸 것으로 유명해졌다. 경찰은 공식적으로 그가 5건의 살인과 2건의 살인 미수를 저질렀으며 추가 범죄가 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조디악 킬러 몽타주. /샌프란시스코 경찰국

반 세기가 넘도록 진범을 잡지 못한 이 사건은 미국판 ‘살인의 추억’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프가 된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는 지난 2019년 잡혔지만, ‘조디악 킬러’는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았다. 사건 이후부터 조디악으로 추정되는 여러 용의자가 나왔고 지난 2021년에도 ‘케이스 브레이커’라는 민간 단체가 2018년 사망한 한 남성을 조디악이라고 지목했으나 수사 당국은 아직까지 조디악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조디악의 첫 편지가 도착한 이후, 약 두 달 후인 9월 27일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나파 카운티의 베레사 호수에서 데이트를 하던 커플이 타깃이었다. 범인의 칼에 여섯 번 맞고 간신히 생존한 남성 브라이언 캘빈 하트넬은 “범인은 자신이 교도소를 탈출했다며 우리의 돈과 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총으로 위협해 우리를 결박한 후, 칼로 찌르고 차를 갖고 도주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 2주 뒤인 10월 11일에는 한 택시 기사가 머리에 권총을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현장을 떠나기 전 죽은 택시기사의 피 묻힌 셔츠를 일부를 갖고 사라졌다.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피 묻은 셔츠 조각과 암호문이 동봉된 편지를 받았다. 경찰은 두 사건 모두 조디악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범인은 180㎝정도 되는 키에 77㎏이 넘는 백인 남성이었다. 원 안에 십자 기호가 새겨진 검은 후드를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조디악의 후드에 있던 아래 기호는 이후에도 조디악이 남긴 흔적이나 보낸 편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어 ‘조디악의 서명’으로도 불린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등에선 지금도 ‘조디악 후디’라고 불리는 옷이 팔리고 있다.

조디악의 서명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 조디악 후디. /아마존

조디악은 편지에 생소한 암호문(아래 사진)을 동봉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조디악이 보낸 암호문 일부를 해독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숲에서 야생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가장 위험한 동물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자랑 성관계를 하는 것보다도 더 스릴 넘친다.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죽으면 낙원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고 내가 죽인 모든 사람이 나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20년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국·호주·벨기에 출신 민간인들로 구성된 해독팀이 조디악이 1969년에 남긴 ‘340암호’(340 cipher)를 푸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첫 편지에 동봉된 암호문을 해독한 이후 51년만에 해독된 내용은 “날 잡으려고 애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길 바란다”, “난 가스실이 두렵지 않다. 날 위한 노예들이 이미 충분한 낙원으로 더 빨리 가게 될 테니 말이다” 등이었다고 한다. 수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반세기만에 또 한번 조디악의 농간에 당했다’는 평이 이어졌다.

1969년 11월 8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보낸 조디악의 편지에 동봉된 '340 암호'. 2020년 12월 5일에 마침내 해독됐다.

조디악은 편지에 경찰을 조롱하는 문구를 넣고 경찰의 점수를 매기는 식으로 샌프란시스코 경찰을 조롱했다. 1978년 4월 24일 보낸 편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나에 대한 영화가 나오길 기다리겠다. 누가 내 역을 맡을까? 모든 것은 내 통제 아래 있다.” 2007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실제로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조디악’을 만들어 개봉했다. 이 영화는 한때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됐던 아서 리 앨런을 조디악 킬러로 그렸고, 그 역할은 배우 존 캐럴 린치가 맡았다.

영화 '조디악' 포스터.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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