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에서 5일 열린 CEPS(유럽정책연구소) 주최 포럼에서 유럽 AI 전문가와 정책 당국자들이 유럽의 AI 기술 주권을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아드리아나 그로 독일 기술국부펀드 공동설립자, 폴 켈러 독일 오픈퓨쳐재단 정책이사, 프란체스카 브리아 이탈리아 국립 혁신 펀드 대표, 마리아 델아퀼라 CEPS 선임연구원, 미카엘 쇤스타인 독일 연방총리실 디지털정책총괄, 로르 블랑샤르 브뤼낙 인베스트EU 투자위원회 위원, 카메란 아쉬라프 위키미디어 재단 이사. /브뤼셀=정철환 특파원

“지금 AI(인공지능)에 통 큰 투자를 해야 한다. 그fj지 않으면 수년 내에 미국이 막대한 AI 기술 이용료를 세금처럼 걷어가는 상황이 온다.”

유럽의 AI 전문가들과 정책 당국자들이 미국 기업들의 생성형 AI 기술 독주에 큰 위기감을 드러내면서 이에 대항할 유럽연합(EU) 차원의 AI 기술 개발을 주장하고 나섰다. AI의 막대한 파급력을 고려할 때 AI 기술은 국가 경제 및 사회 안보 차원의 핵심 역량이므로 특정 국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는 ‘지정학적 다양성’ 확보가 시급하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오픈AI와 구글, 엔비디아 등이 주도하는 미국의 AI 산업 역량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중국과 EU뿐”이라며 미국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 EU 회원국들이 연합해 과감한 재정 투자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일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정책연구소(CEPS) 주최로 열린 포럼에 참석한 이들은 “기술 투자 생태계의 규모, AI 인재의 집중도, (AI 개발에 필요한) 언어 데이터의 규모 등에서 미국은 압도적 장점을 누리고 있다”며 “이에 비해 유럽과 일본, 한국 등의 국가는 상당한 열세”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어떤 국가든 자체 LLM(대규모 언어 모델)에 기반한 생성형 AI 기술을 갖추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미국 혹은 중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한 독일 AI 전문가는 “가장 위험한 요소는 AI 인재의 누수”라며 “세계적으로 AI 인재들이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고, 이런 식이면 5~6년 후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스스로 AI 인재를 길러내는 능력마저 잃어버리게 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또 한 현직 산업 정책 당국자는 “AI가 경제와 산업 및 공공 영역 전반에 확산되는 속도로 볼 때, 미국 기업의 독주가 계속되면 수년 후 이들이 (AI를 활용해) 타국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의 일부를 ‘AI 세금’처럼 받아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AI 기술 주권(sovereignty)’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지지를 받았다. 오픈AI의 ‘챗GPT’ 등과 경쟁 가능한 우수한 AI 기술을 하루 빨리 확보해 기술 종속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시장과 기업에 AI 기술 개발과 투자를 맡겨 놓아서는 그 격차를 따라잡기가 힘들 수 있다”며 “정부 재정을 동원해 AI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프랑스 AI 전문가는 “한국의 경우 네이버가 생성형 AI 기술에 집중하고 있으나 챗GPT 및 구글 제미나이(Gemini)와 격차가 점점 벌어져 자체 AI 개발에 대한 회의론이 크다고 들었다”며 “한국도 빠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등은 이미 AI 투자를 위한 국부 펀드를 조성해 각각 프랑스어 기반 LLM, 소프트웨어 코딩 AI, 의료용 AI 등의 개발에 나섰다. CEPS는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MS) 한 회사가 AI에 100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투자를 퍼붓는데, 유럽 내 AI 투자는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EU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재정을 동원, 수천억달러(수백조원) 규모의 압도적 투자를 하는 ‘문샷(Moonshot·달 탐사와 같은 야심적 연구) 프로젝트’가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의 AI 전문가들은 “교육과 공중보건·의료, 세무 등 분야에서 AI 사용이 급격히 확산할 것”이라며 “이런 공공 영역에서 민주적으로 통제 가능한, 투명성이 보장된 AI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정부 차원의 AI 투자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한 EU 당국자는 “AI 분야의 최고 인재들이 공공 영역에서 활약할 수 있는 곳이 세계에 적어도 한 곳 이상 있어야 한다”며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처럼 유럽 국가들의 ‘컨소시엄 AI 기업’을 만들자는 주장도 했다.

이날 포럼에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주요 EU 회원국 전문가들과 정책 담당자, EU 고위 관계자, 유럽의회 의원 등이 대거 참석해 채텀하우스 규칙(발언자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따라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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