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이 팬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랜드 박스데일 주심이 홈플레이트를 쓸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미국행 이후 4년 만에 친정팀 홈구장에 등장한 김하성(28·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헬멧을 벗고 양팔 벌려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고척돔은 환호로 가득 찼고 그야말로 낭만 넘치는 순간이 그려졌다. 국내 야구팬들을 뭉클하게 한 이 장면은 사실 주심의 사려 깊은 배려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2024 시즌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개막전인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는 20일 오후 7시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렸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MLB 개막전이자, ‘몸값 1조원’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0·LA 다저스)의 이적 후 첫 경기였기에 세계의 관심이 쏟아진 경기였다.

무엇보다 국내 야구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 건 4년 만에 돌아온 김하성이었다. 2014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그는 5년간 고척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며 뛰었기 때문이다. MLB 진출 후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거머쥔 김하성의 금의환향이었다.

이런 스토리답게 이날 경기 2회 김하성의 첫 타석에는 팬들을 뭉클하게 한 장면이 나왔다. 그의 이름이 전광판에 뜨고 곧이어 타석에 등장하자 팬들은 환호했다. 김하성은 이에 화답하듯 헬멧을 벗고 만세 자세로 인사했다. 그러자 더 큰 함성이 고척돔을 가득 채웠다.

김하성이 팬들에게 인사한 후 배려해준 박스데일 주심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팬들을 소름 돋게 한 이 순간 뒤에는, 사실 주심을 맡은 랜드 박스데일 심판위원의 배려가 있었다. 김하성이 피치클록(타격 준비를 위한 시간제한)에 신경 쓰지 않고 충분히 인사할 수 있도록 깨끗한 홈플레이트 위 모래를 직접 털어낸 것이다. 주심이 움직인다는 건 경기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여서 피치클록도 작동하지 않는다.

실제로 타석을 가까이에서 포착한 중계 화면을 보면, 박스데일 주심은 김하성이 나옴과 동시에 마스크를 벗고 타석 주위를 돈다. 이어 허리 숙여 홈플레이트를 쓸어냈고, 그사이 인사를 마친 김하성과 짧은 대화를 나눈다. 김하성은 미소를 띤 채 고마움을 전하는 듯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이를 본 중계진 역시 박스데일 주심의 배려를 알아채고 감탄했다. 해설을 맡은 전 메이저리거 투수 김선우는 “심판과 LA다저스 포수 윌 스미스가 얘기해준 것 같다”며 “이게 바로 메이저리그 클래스다”라고 했다. 송재우 해설위원 역시 “홈플레이트 깨끗하다. 근데 시간을 끌어주기 위해 일부러 쓸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하성도 경기를 마친 뒤 박스데일 주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김하성은 “한국에서 경기하는 거라 심판께서 배려해 주신 것”이라며 “덕분에 팬들에게 인사하고 타석에 설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정말 기분 좋았고 감사했고 색다른 느낌이었다”며 “고척에서 이렇게 MLB 정식 경기를 한다는 게 기뻤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기는 오타니의 쐐기타로 승부를 뒤집은 다저스가 5대 2로 승리했다. 두 팀은 21일 오후 또 한 번 고척에서 2차전을 치른다. 파드리스는 조 머스그로브를, 다저스는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선발 투수로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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