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엑스포에서 21일 열린 '2024 원자력에너지 정상회의'에 참석한 30여개국 정상과 대표들. /연합뉴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세계 각국 대표들이 모여 원자력 발전(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회의를 열었다. 유럽에서 원전의 개발과 활용에 초점을 둔 정상급 회의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때 세계적 탈원전 기조를 이끌었던 유럽이 이젠 반대로 원전의 재발견과 확산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원전 없이는 전쟁 등 지정학적 혼란으로 인한 에너지난과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 위기 대응이 힘들다는 현실을 마주하면서다.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공동으로 21일 브뤼셀에서 ‘원자력 정상회의(Nuclear Energy Summit)’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정상들과 함께 총 38국 정부 대표들이 모였다. 한국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화석 연료 사용 감축과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 발전 촉진을 위한 원전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연설에서 “원전의 안전한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라며 “넷제로(순탄소 발생량을 ‘0′으로 낮추는 것·탄소중립)를 향한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원전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규모 투자와 소형모듈원전(SMR) 등 기술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선 최근 저탄소 에너지원으로서 원전 산업을 다시 육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 천연가스와 원유 의존에서 벗어나 에너지 독립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겠다는 EU의 목표 달성을 위해선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유럽 최대 원전 국가인 프랑스를 비롯, 벨기에와 독일 내 보수 정치권 등이 주도하고 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이날 “우리(유럽)는 원자력 분야에서 70년 넘는 전통을 갖고 있다”며 “넷제로 목표와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원자력 분야에서) 유럽 국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종호 장관은 “한국은 국제사회 움직임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원자력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SMR 등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차세대 원전 기술 경쟁에서 유럽이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