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테러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한 소년 영웅 이슬람 할릴로프(15). 러시아 프로축구 구단이 선물로 준 유니폼을 들고 있다. /인스타그램

약 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끔찍했던 러시아 모스크바 테러 현장에서 100명 이상을 구한 중앙아시아 이민자 소년이 ‘시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온라인매체 가제타루 등에 따르면, 15세 소년 이슬람 할릴로프(15)는 총격이 벌어졌을 당시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의 1층 외투보관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할릴로프는 모든 관리자와 마찬가지로 긴급 상황 발생 시 지침을 사전에 교육받았다고 한다. 그는 총격이 시작됐을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즉시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에스컬레이터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며 “하지만 (총격 및 비명) 소리가 점점 커졌고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때 할릴로프는 침착하게 나섰다. 공포에 빠진 사람들을 안심시킨 뒤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을 안내한 것이다.

테러 현장에서 할릴로프가 촬영한 영상. "저쪽으로 가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텔레그램

사람들은 총격범이 있는 정문을 피해 다른 문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문은 닫혀있었고, 건물 출입전용 카드로만 열 수 있어 사람들은 건물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할릴로프는 “그들이 총을 쏘고 있어요. 지나가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 카드로 문을 열었다. 이후 사람들을 사무동을 통해 무사히 공연장 밖 거리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할릴로프가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보면, 그는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저쪽으로, 모두 저쪽으로 가세요!”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할릴로프 덕에 100여명의 사람들은 부상도 입지 않고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할릴로프는 “내가 혼자 도망치면 수백 명이 더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능한만큼 사람들을 데리고 대피한 것”이라며 “나는 내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테러 현장에서 할릴로프가 촬영한 영상. /텔레그램

할릴로프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2세로, 현재 8학년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할릴로프의 영웅적인 행동이 알려진 뒤 많은 이들이 감사를 표했다. 러시아 무슬림 지도자인 무프티 셰이크 라빌 가누트딘은 사람들을 구한 공로를 인정해 그에게 최고 무슬림상을 수여하겠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래퍼 모르겐시테른은 감사의 표시로 100만루블(약1450만원)을 전달했다.

할릴로프는 러시아 프로축구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유소년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구단은 할릴로프를 경기장으로 초대해 1군 선수들을 만나게 해주고 시즌티켓과 유니폼을 선물했다.